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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혼다 미국하원 방문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9-08-20
'못다핀 꽃'들이 모여 평화를 노래하는 나눔의 집,

살아 있는 역사관, 일본군‘위안부’문제 잊혀져 가나.



2009년 8월 12일,

마이크 혼다 미국하원이 2007년 11월 26일 방문이후, 2번째로 나눔의 집을 방문 했습니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약속한 예정시간 보다 20분 빠른, 오후 3시40분에 도착한 혼다의원, 차에서 내려 제일 먼저, 야외 강덕경 할머니 추모비에 추모를 했습니다. 추모 후,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3월 새로지은, 집중치료실로 이동, 거동이 불편하여 수요집회 참석하지 못하고, 집중치료실을 지키고 있는 김군자 할머님과 뜨거운 포응과 함께 인사를 했습니다. 혼다의원이 먼저 ‘마이 시스터’라고 이야기하자, 김군자 할머님이 ‘마이브라더’라고 대답해 ,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먼저 나눔의 집 방문에, 송월주 큰스님, 나눔의 집 대표께서 인사말씀을, 그리고 참석자 소개, 혼다의원과 기자들의 질의 응답, 할머님들의 말씀, 선물전달로 마무리 했습니다. 그리고 나눔의 집에서 준비한 저녁은, 한식으로 후원자분들이 준비하였습니다. 예정에 없던 식사를 한후, 오후 6시 떠났습니다.



참석자 : 송월주 큰스님 나눔의 집 대표이사, 이한성 국회의원, 이종연 재미변호사,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 김동석 뉴욕누저지주 유권자인권센터 소장과 부인,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관련 소설 ’잘가요 언덕‘을 쓴 배우 차인표씨가 함께 했습니다.


동영상보기 : http://news.naver.com/main/vod/mms.nhn?oid=052&aid=0000261699


기사내용 :

"My Brother" "My Sister" 다시 만났네
미국 하원 위안부 결의안 통과 주도한 혼다 의원, 나눔의 집 두번째 방문
"세계 정의 세우는 데 할머니들 증언 큰 힘
일본 사과하도록 오바마 대통령에 조언할 것"


"언제 또 올건가? 나 죽기 전에 한번은 더 봐야지."(김군자 할머니) "10년 후쯤이요."(마이크 혼다 의원) "에이, 그때꺼정 내가 어떻게 살아? (앞으로) 못 보겠네." "10년 후까지 꼭 사시라고 그렇게 말씀 드린 거에요, 허허허."

마이크 혼다(67)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12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다시 만났다. 2007년 11월 첫 만남 후 2년만의 재회지만, 갓 여행을 다녀온 오랜 지인을 만난 듯 서로 얼싸 안으며 반가운 정을 나눴다.

일본계 3세인 혼다 의원은 2007년 7월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당시 미 하원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시인과 사과 및 역사적 책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그 누구보다 든든한 우군인 셈이다.

이날 오후 혼다 의원이 나눔의 집에 도착하자, 김군자(86) 할머니가 가장 먼저 그를 맞았다. 정오에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에 허리가 아파 참석하지 못하고 홀로 방을 지키고 있던 참이었다.


김 할머니는 보조기구를 이용해 방에서 걸어 나오면서도 얼굴에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My Brother"를 연방 외쳤다. 혼다 의원도 김 할머니를 "My Sister"라 부르며 친근감을 과시했다. 혼다 의원은 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면서 지난해 초 타계한 지돌이 할머니와 문필기 할머니를 회상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한 시간쯤 뒤 수요집회를 마친 5명의 할머니들이 돌아오자, 나눔의 집은 반가움의 물결로 술렁였다. 할머니들은 거실로 들어서기 바쁘게 혼다 의원과 얼싸 안으며 그 동안의 안부를 챙겼다. 할머니들은 혼다 의원에게 "다음 방문 일정은 꼭 잡고 가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혼다 의원은 이 자리에서 '위안부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보인 할머니들의 역할에 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세계 정의를 세우는 데 할머니들 증언이 큰 역할을 했다"며 "이런 노력이 일본의 사과를 이끌어 내고 다시는 여성이 폭력에 희생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국무장관에게도 일본이 사과하도록 조언하라고 말하겠다"고 덧붙였다.

혼다 의원은 이어 "일본 국민들부터 위안부 문제를 인식해 정부가 사과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일출(82) 할머니는 "우리가 죽으면 이 문제가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일본 정부가 너무 괘씸하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할머니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한 혼다 의원은 3시간 가량의 방문을 마치고 이날 저녁 나눔의 집을 떠났다. 이날 방문에는 지난 4월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잘가요 언덕'을 쓴 탤런트 차인표씨도 함께 했다.

5박6일 일정으로 10일 입국한 혼다 의원은 13일 강원대학교에서 명예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고 14일 강원도 고성군 DMZ박물관 개관식에 참석하는 등 일정을 마친 뒤 15일 출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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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9/08/13 02:52:47 수정시간 : 2009/08/13 02:58:58









위안부 할머니 부둥켜안고 스스럼없이 “나의누이”
[중앙일보]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주도한 혼다 의원
할머니들 보금자리 광주 ‘나눔의 집’ 찾아
“My sister(나의 누이).” “My brother(나의 형제).”



마이클 혼다(68) 미국 하원의원과 김군자(84) 할머니는 서로를 누이·형제라고 불렀다. 12일 경기도 광주에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금자리 ‘나눔의 집’에서였다.

“다음엔 언제 또 오나. 죽기 전에 한번 더 봐야지.” “10년 뒤에나 올 거요.” “에이, 그렇게 오래는 못 살아.”

통역을 통해 실제 친형제자매 못잖게 살가운 이야기가 오갔다.

일본계인 혼다 의원은 미국 민주당 소속 5선 의원. 캘리포니아 주하원의원을 거쳐 2000년 연방 하원의원이 됐다. 그는 2007년 1월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를 공식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미 하원 결의안 121호, 소위 ‘위안부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하원을 통과하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일본 정부의 로비가 집요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세 명을 하원 청문회에 세워 일제의 만행을 직접 고발하게 했다. 김군자 할머니도 그때 청문회에 섰다. 이런 까닭에 2년 만에 해후한 혼다 의원과 김 할머니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안부를 묻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혼다 의원의 ‘나눔의 집’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07년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뒤 처음 찾았다. 그 후 2년, 다시 찾은 ‘나눔의 집’에는 변화가 많았다. 집중 치료가 가능한 간병동이 들어섰고 생활관은 한창 짓는 중이다. 또 위안부 할머니 2명이 세상을 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은 변화가 없다. “이미 여러 번 해 더 사과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혼다 의원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일본의 새 세대들이 위안부 문제를 알게 돼 결국 일본 정부도 바뀔 것”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그는 또 절친한 에니 팔레오마베가 미 하원 외교위 동아태환경소위 위원장과 함께 미국 정부가 위안부 결의안을 유엔에 상정할 수 있도록 의회 차원에서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혼다 의원과 동행한 김동석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소장은 “비밀리에 추진하던 일인데 팔레오마베가 의원이 갑자기 공개하는 바람에 일본 측에서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혼다 의원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일본계 이민 3세다. 그 탓에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적국인’으로 분류돼 수용소에 수감됐었다. 이런 경험이 오히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을 더 단호하게 만들었다. “미국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시민들을 감금한 데 대해 공식 사과한 것처럼 일본도 한국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강원대 초청으로 방한한 혼다 의원은 당초 계획보다 30분가량 일찍 ‘나눔의 집’에 도착해 2시간30분을 머물렀다. 서울에서 저녁 약속이 있음에도, 식사를 준비해놨다는 말에 기꺼이 할머니들과 한 식탁에 앉았다.

광주(경기도)=김한별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혼다 美 하원의원, 나눔의집 두번째 방문>


'나눔의 집'서 'sisters-brother' 호칭하며 할머니들과 해후
"문제인식 확산되면 몇년후 일본정부가 사과할 것"

(광주=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My sister, 안녕하세요"(마이클 혼다 미 하원의원), "My brother 반가워요, 오셔서 감사합니다"(김군자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난 2007년 미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마이클 혼다 하원의원이 12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을 찾았다.

2007년 11월 26일 나눔의집을 찾아와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위해 증언한 나눔의집 할머니들에게 "당신들은 등대이고 황금같은 존재"라고 찬양한 이후 두번 째 방문이다.

강원도지사 초청으로 방한한 혼다 의원은 강원대학교에서 명예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고 고성 DMZ(비무장지대) 박물관 개관식에 참석하는 등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할머니들을 잊지 않고 찾아왔다.

예정시간보다 20여분 앞선 오후 3시 40분께 도착한 혼다 의원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당에 세워져 있는 고(故) 강덕경 할머니 1주기 추모비 앞에서 묵념을 했다.

이어 할머니들이 임시로 기거하는 집중치료실 건물에서 2007년 위안부 결의한 채택을 위해 미 하원 청문회에서 증언한 김군자(82) 할머니와 반갑게 해후했다.

다른 할머니들은 매주 서울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석중이었다.

허리가 아파 압박붕대를 감고 보조기에 의지해 방에서 나온 김 할머니는 자신보다도 머리가 하얀 혼다 의원에게 다가가 두 팔을 벌려 뜨겁게 포옹했고 혼다 의원은 "10년후에도 만날수 있게 건강하시라"고 덕담을 했다.

김군자 할머니 손을 꼭 쥐고 반가운 해후의 정을 나누던 혼다 의원은 수요집회에 갔다 오후 4시 20분께 돌아온 강일출(79) 할머니 등 나머지 할머니 5명과도 다시 만났다.

혼다 의원은 "2007년 채택한 위안부 결의안은 여기 계신 할머니들이 세우려는 정의를 기초로 한 것이며 세계 정의를 세우는 데 할머니들의 증언이 큰 역할을 했다"면서 "이런 노력이 일본의 사과를 이끌어 내고 다시는 여성이 폭력으로 희생당하지 않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할머니들의 노력과 열정에 감사를 보냈다.

그는 또 "세계 9개국이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했고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미디어를 통해 세계에 알려지면서 일본 국민이 과거 자신의 정부가 한 일을 점차 인식하고 있다"며 "몇년 후에는 일본이 사과할 것이며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도 일본이 사과하게 어드바이스를 하도록 말하겠다"고 덧붙였다.

혼다 의원은 '일본의 집권당이 바뀌면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사과할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부보다는 국민들이 밑에서부터 위안부 문제를 인식하고 정부가 사과하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게 더 중요하다"면서 "이런 국민의 목소리를 표출하는데 미디어가 큰 역할을 해주야 한다"고 강조했다.

1시간이 넘는 간담회를 마무리하기 위해 대표로 강일출 할머니가 "우리가 피해를 입은지 64년이 지났지만 일본 정부는 아무 말도 없고 끄덕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죽으면 이 문제가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일본 정부가 너무 괘씸하다"며 울분을 토해내자 혼다 대표는 "할머니들을 존경한다. 제발 싸움의 힘을 잃지 마세요"라고 위로했다.

간담회를 마친 혼다 의원은 잡채와 떡 등 나눔의집이 정성껏 마련한 한식뷔폐로 저녁식사를 한 뒤 오후 6시께 할머니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눔의집을 떠났다.

이날 방분에는 뉴욕 뉴조지 한인유권자센터의 김동석 소장과 일본 강점기를 배경으로 위안부 피해 내용 등을 담은 장편소설 '잘가요 언덕'을 쓴 탤런트 차인표씨가 함께 했다.

hedgeho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9/08/12 18:48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