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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 친일파의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3-09-17
이라크 파병, 친일파의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주장] 60년전 친일파의 주장과 종미적 이라크 파병 찬성론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홍준용 기자



태평양 전쟁 당시 친일파들은 조선인 청년들에게 일본이 행하는 전쟁에 동참할 것을 독려했다.

그들은 대동아공영권을 실현하여 서구열강에게 억압받는 아시아 민중을 해방시키고 조선인들도 이 의로운 전쟁에서 제몫을 다하여 실리를 챙겨야 한다며 민중을 현혹했다.

해방 후 독립국가가 건설된 지금까지도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여전히 기득권을 누리고 살아가지만 역사 앞에 서면 항상 그 더러운 치부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이를 감추기 위해 온갖 궤변과 변명을 늘어놓기 바쁘다.

그 중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일제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했다"는 식의 말이다. 서정주 같은 경우엔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년은 갈 줄 알았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하에 세계를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삼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그러했고 지금의 이라크 침공도 마찬가지다.

지난 1차 파병 때만 해도 일부 파병 찬성론자들은 부시 행정부가 주장하던 전쟁의 명분을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하여 파병의 당위성을 역설하기도 했지만 종전 후 지금까지도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음은 물론이요 이라크가 테러와 관계되었다는 명확한 근거는 밝혀진 바 없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유엔의 승인도 받지 못한 명분없는 전쟁이며,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고 석유를 얻기 위한 더러운 자국 이기주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다시금 한국에 전투병의 파병을 요청하자 벌써부터 국내의 일부 인사들과 신문들은 "파병을 해야 한다" 혹은 "파병을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운을 띄우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과거 일제 강점하에 아시아 민중 해방이라는 거짓 명분과 조선 민중의 실리를 챙긴다는 헛된 망상으로 조선인들에게 전쟁 참여를 독려하던 친일파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라크 민중을 해방시켜 민주주의를 구축한다는 명분,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한다는 이유로 파병을 주장하는 현실.

60여년 전 친일파들의 입을 통해 나왔던 것과 유사한 발언이 지금도 국내 거대 매체들을 통해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60여년 전 우리는 독립 국가를 이루지 못 했고 따라서 헌법도 없었기에 일본의 지시에 순응한 친일파들은 서정주처럼 '종천순일(從天順日)'같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나름대로 자신의 과오에 대한 핑계를 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엄연히 독립국가이며 국가를 운영하는 기본틀인 헌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파병 찬성론자들이 과거의 친일파가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조한 것처럼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여 국익을 앞세운 파병을 주장한다면 종미파(從美派)라는 비난에 앞서 헌법질서를 무너뜨린 자라는 비판까지 받아야 할것이다.

만약 헌법질서 파괴자란 비판을 받기 싫다면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항구적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 한다"는 문구와 헌법 5조 1항에 규정된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문구를 삭제하기 위한 헌법개정절차부터 밟아야 할 것이다.

헌법은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리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들먹이며 공고한 한미동맹을 위해서 파병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사대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와 헌법학자들의 다수설적 견해는 조약과 같은 국제법의 지위를 헌법 하위에 두고 있다.

인권보장적 국제규약이나 조약들은 국내에서 그 법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 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위 학설을 이유로 들어 이것들에 대한 법적 지위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법규를 헌법의 하위인 법률과 동일시 한 뒤 국내법을 제정, 개정하고 신법우선, 특별법 우선 원칙을 내세우면 결과적으로 국제법의 경우 적용의 여지가 없게 됨.)

그런데 어찌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대한민국 헌법보다 우월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가? 다분히 편의적이고 종미적인 법적용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한미상호방위조약 상으로도 미국이 요청하면 무조건 파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본토가 침공을 당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라크가 테러와 관련이 있다거나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했다는 증거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지 않은가!

지금처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철저한 종미적 관점에서 무리하게 해석하여 헌법의 이념을 깡그리 무시한 채 허울만 남은 국익을 내세워 파병을 주장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파병 찬성론자들은 좀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주장의 타당성은 차치하고라도 차라리 "이번 전쟁이 미국의 침략 전쟁임은 분명하지만 미국의 위협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국익을 내세운다 하여도 그 비굴함이 감추어질 수는 없을 것이며 대한민국이 헌법을 무시하고 인류평화를 위협하는 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도 감출 수 없다.

찬성론자들은 자신의 주장에 책임을 질 각오를 해야할 것이다. 전투병의 파병이 이루어 진다면 국군의 상당수가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을 확률은 매우 높다. 그때 가서는 "그래도 한국군은 용감하여 미군보다는 적게 죽었다"라고 할텐가?

최소한의 인류의 보편적 가치질서와 헌법을 무시한 채 국익을 앞세우는 것은 나치가 국민을 기만할 때 자주 사용한 단골메뉴임을 잊지말자.

2003/09/16 오후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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