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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사죄·배상 못받는게 너무 억울해"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3-08-17
"일본에 사죄·배상 못받는게 너무 억울해"

=위안부 김군자 할머니=

"광복절이 벌써 58년이나 됐어. 난 이제 다 살았어. 세월은 갔고, 이제가도 여한이 없어. 근데 그놈들한테 사죄받고 배상 못 받고 가는게 너무 억울해…."

김군자(金君子. 78)할머니는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차 '나눔의 집(http://www.nanum.org/)'에 찾아온 손님들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기 듯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나눔의 집'에는 광복절을 맞아 2003년 미스코리아 진 최윤영양 등 당선자 일행이 방문했고 한.일 양국 교류 학생 30여명도 견학차 찾아왔다.

자원봉사자들이 점심을 차리고 노래자랑 등 경로잔치를 열었지만 金할머니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상선 수술로 노래를 부르지 못해 방해가 될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마음이 편치 않아서였다.

金할머니를 비롯한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11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은 강제징용자 등 다른 태평양전쟁 피해자들과 함께 지난 13일 청와대에 '국적포기서'를 제출했다. 이들 할머니들은 정부가 일제 피해자들에 대해 무성의한 태도로 외면하고 있다며 나라를 버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청와대측이 국적포기서 접수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이들의 집단 국적포기서 제출은 무산됐으나, 金할머니는 "정부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 대통령도 국회의원들도 귀담아 듣질 않아"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金할머니는 17세때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군에 성노리개로 유린되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다 20세때 해방을 맞이했다. "몇일동안 총소리가 안나더라고. 그러더니 일본군이 아무데나 가래. 나중에서야 해방이 된 걸 알았지. 그래서 무작정 걸었어. 얼마를 걸었던지 백두산이 나오더라고…."

고향에 돌아온 金할머니는 "조국이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외교상의 이유로 우리를 외면하는 정부가 너무 괘씸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식은땀을 계속 흘리던 金할머니 보면서 묻지는 않았지만 건강이 썩 좋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金할머니의 왼쪽 귀는 위안부 시절 일본군 장교에게 맞아 고막이 터지면서 듣지 못하게 됐고 양쪽 무릎은 관절염 수술로 지팡이 없이는 거동이 불편했다. 오른쪽 무릎근처에 있는 10cm정도의 원형 흉터는 일본군이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칼로 찌른 후 빙빙 돌려 생긴 상처라고 한다.

"차라리 죽을 병이라면 정리하고 기다리겠어. 나는 아파 죽겠는데 병원에선 문제가 없데. 스트레스래. 한약방에서는 화(禍)라 그러고. 기가 막히지…" 라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金할머니는 지난 2000년 21년간 파출부 등으로 모은 전재산 5천만원을 불우이웃에 써 달라며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16일엔 한 인터넷 동호회에서 수익의 1%씩을 기부한 8백15명이 꽃다발을 들고 방문할 예정이다. 이에 金할머니는 "그래도 아직은 나쁜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더 많다"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일본정부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아 불우한 이웃을 돕고 싶다"는 金할머니는 "그렇게만 된다면 죽어도 한(恨)이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金할머니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여쭤봤다.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어. 성당다니다 죽으면 천사처럼 산대.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천사같이…."

디지털뉴스센터 이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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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15 13:44 입력 / 2003.08.15 14:52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