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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 10년째 환청·망상 시달려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5-03-11

위안부 할머니 10년째 환청·망상 시달려



[한겨레 2005-03-11 19:03:14]



00500000012005031102282325.jpg[한겨레] 밤마다 누가 문을 똑똑…두런두런 말소리…


“저 X의 아랫도리를 먹은 뒤 죽여버려야 돼!”“그래. 저 X을 죽여버리자!”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사는 황아무개(81)씨의 귀에는 밤마다 이런 이야기가 ‘선명하게’ 들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누가 문을 똑똑 두드리기도 한다. “저리 가”라고 그가 외치고 나면 사람들이 사라진다. 하지만 두런거리는 말소리는 밤새도록 계속된다. 밖에서 벽을 뚫기도 한다. 문을 잠궈 놓으니 그런 식으로 집으로 들어오려는 것일 게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이런 말소리가 들린 것이 벌써 10년째다. 10년 가까이 늘 잠이 부족하고 피곤하기 이를 데 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런 말소리가 들린다고 가르킨 방향은 아파트 6층의 바깥 허공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던 황씨가 10년째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그건 환청일 뿐이라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60여년 전 겪었던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경험’은 지금도 그에게는 ‘현재 상황’이다.

그는 1924년 함경도 쪽에서 태어났다. 너무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떠나와 정확한 고향이 어디인지 모른다. 식모살이를 전전하며 대전까지 내려갔다가 열서너살 때 서울로 올라왔다. 어느날 길거리에서 갑자기 ‘일본 순사’에게 붙잡혔다. 끌려 간 곳은 함경남도 흥남의 유리공장이었다.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모여 유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뒤 그는 다시 간도 지방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일본군의 ‘성노리개’가 됐음은 물론, 계속되는 구타와 욕설로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졌다. 그의 오른손은 당시 일본군이 “말을 안 듣는다”며 군홧발로 짓밟아 손가락 끝이 꺾이기까지 했다.

광복 뒤 고국에 돌아왔으나 그는 남의 집 식모살이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몸을 이렇게 버려서 무슨 가정을 갖겠냐”며 가정도 꾸리지 않았다. 식모살이도 하고, 고물도 주워 팔면서 어렵게 살아오다가 11년 전 정부가 내준 영구임대아파트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악몽이 다시 시작된 것은 10년 전부터다. 황씨는 그 무렵부터 근처 ㅁ고등학교 학생 2명을 일본군으로 여기는 망상에 빠졌다. 최근 그를 진료하고 있는 정신과의사 김아무개 박사는 “할머니에게 위안부 시절의 정신적 충격이 뒤늦게 정신적 외상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황씨뿐만 아니라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세대 의대 민성길 교수가 2003년 위안부 출신 노인 26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논문을 보면, 26명이 모두 ‘충격 후 스트레스 장애’(큰 충격을 받은 뒤 나타나는 정신적 장애)를 겪었으며, 그 중 8명(30.8%)은 6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런 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민 교수는 “스트레스 장애를 갖고 있는 할머니들은 각종 신체적 후유증, 불면증, 악몽, 우울증, 공포증, 홧병 등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며 “늦기 전에 위안부 생존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정신의학적 조사를 벌이고 사회적 보상뿐 아니라 의학적 보상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