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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피스로드"(한일대학생캠프)-1년 2번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5-02-19


한ㆍ일 대학생 캠프 나눔의집 피스로드 현장
“역사 문제, 우리가 앞장서서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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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뒤어서 열심히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의 모습.


2월 16일 일본대사관 앞 제644차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수요집회. 궂은 날씨 속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보며 일본 대학생 나오키(24)씨와 타카코(24)씨가 대사관을 향해 외쳤다.

“언제까지 우리가 한 일에 눈을 감을 겁니까! 그 과거를 직접 마주한 이들이 여기 앉아있습니다. 과거를 무시한 미래의 평화가 있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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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제644차 수요집회에서 자유발언을 하고 있는 피스로드 참가자 나오키씨와 타카코씨.


이들에 이어 한국 대학생 이성구(26)씨가 나섰다. 할머니들의 청춘을 빼앗고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정부를 향해 자작시 ‘호소의 시(詩)’를 힘주어 낭송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를 그저 무심히 지나쳐 가는 인근 회사원들의 발걸음에 학생들의 얼굴에는 서운함이 가득했다. 그래도 ‘보상하라’며 열심히 구호를 따라 외치는 30여명의 한국과 일본 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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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갖은 고문으로 악명높았던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한 피스로드 참가자들이 고문 모형을 보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원장 원행)’에서는 한국 대학생 16명과 일본 대학생 12명이 참여한 가운데 2월 14일부터 18일까지 ‘제3회 나눔의 집 피스로드(Peace Road) 캠프’가 열렸다.

학생들은 ‘피스로드’란 말 그대로 미래의 평화를 위해 ‘위안부 문제’를 직접 겪은 할머니들을 통해 그 역사를 체험하고자 스스로 찾아왔다. 현재 양국이 가지고 있는 과거사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싶어 하는 열린 열정의 소유자들인 셈이다.

사실 피스로드는 2002년부터 매년 열려왔지만 올해는 광복 60주년에다 ‘한ㆍ일 우호의 해’라 의미가 각별하다. 그래서인지 양국 대학생들은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는 듯 했다.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아득하지만 누군가 해결해야할 시대적 과제가 자신들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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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학생 이성구 씨가 일본대사관을 향해 자작 호소의 시를 낭송하고 있다.


수요집회 참석에 앞서 학생들이 방문한 곳은 일제시대 독립투사들에 대한 고문으로 악명 높았던 서대문 형무소. 이 곳에서 일본학생들은 연신 “사무이데스(추워요)”라고 말하며 형무소의 차가운 고문 틀을 직접 경험해보기도 했다. 피스로드에 참여할 정도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은 갖추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양국 학생들은 고문 기구와 사형집행 장소를 보면서 놀라움에 몸을 떨었다.

대학생은 아니지만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다 캠프에 참여한 키요에(64)씨는 형무소를 둘러보며 “이렇게 잔인한 역사가 있다니, 정말 미친 짓”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피스로드에서 참관과 체험활동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피스로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역사문제를 인식할 것인가다. 이번에 참가한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자국의 역사인식, 위안부 할머니 문제 등에 대해 열띤 토론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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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로드 참가자들이 청소 봉사를 끝낸 후 박옥력 할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본 지도층의 과거사 문제 관련 망언이 계속되고 일본 재판부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패소 판결을 한 이유에 대해 “일본 국내법 미비와 양국 정부의 무관심”이라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다. 전쟁 피해 보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여성 문제로까지 위안부 문제를 확장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들이 토론을 통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부분은 양국의 ‘교과서 문제’였다.

일본 학생들은 “현재와 같이 극우 세력이 사회전반을 주도할 때는 일선학교에서 일본의 과거사가 왜곡되거나 삭제된 교과서를 선택할 가능성이 많다”, “태평양전쟁 당시 전쟁터였던 오키나와에서는 교과서를 통해 이 때의 피해 상황을 알리고 있지만 나머지 지역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등의 의견을 내 놓았다.

한국 학생들은 “피해 당사자인 한국의 제 7차 교육과정 역사책에서조차 위안부를 비롯한 태평양전쟁 희생자에 대한 언급은 단 몇 줄”이라고 흥분했다.

일부 학생들은 다른 문제에는 조용하다 유독 ‘교과서 문제’에는 뜨거운 관심을 보이기도 할 정도로 학생들이 교과서 문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잘못된 교과서 내용이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후세대들을 자꾸 길러낸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이 계속해서 잘 지내보고자 노력하지만 진정 그렇게 될 수 없는 근원적 문제들은 방치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심이었다.

교과서 문제에 대해 통역을 맡은 오가사와라(36)씨는 교과서보다 교육자의 인식이 중요하다며 방향을 달리하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교과서에는 없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 문제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교육내용이 달라져요. 저의 경우에는 특히 이 부분을 가르칠 때 ‘시험 문제에 꼭 하나 나올 것’이라고까지 말하면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요. 결국 중요한건 마음이거든요.”

오기사와라씨 자신이 한국 유학생활을 통해 알게 된 위안부 문제를 현재 일본 교토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며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국과 피해국이라는 엄연한 차이. 하지만 캠프 참가자들에게는 오직 ‘올바른 역사’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일정 속에서도 끈끈한 우정을 나눴다. 여느 청년들의 모임에서 볼 수 있듯 “술 한 잔 하자” “꼭 전화해야 한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오갔다. 생각을 같이 하고 있다는 깊은 동질감이 서로를 단단히 묶어놓은 것이다.

캠프에서 함께하며 느낀 것을 잊지 않고 알리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임무’를 스스로에게 지운 것도 양국 학생 모두 똑같았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들과 친구들도 그럴까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릴 수 있는지 실천적 방안도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이현석(25)씨의 말에 수긍하며 진지하게 다시 토론하면서 이것저것 함께 하자고 모의하는 한ㆍ일 학생들. 이들에게서 위안부 문제와 같이 자꾸만 잊혀져 가는 양국 역사의 굴곡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축적되고 있었다.

3ㆍ1절을 앞두고 펼쳐진 나눔의 집 피스로드. 참가 한ㆍ일 청년들은 서로 양국의 진정한 화합과 평화를 일궈내는 씨앗으로 자리매김 할 것을 약속하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2005-02-18 오후 6:13:00
김강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