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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인터뷰> 무라야마 전 일본 총리(종합)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5-02-02
<연합인터뷰> 무라야마 전 일본 총리(종합)

[연합뉴스 2005-02-02 11:49:12]


"日개헌은 `전쟁할 수 있는' 국가 전환 의미""일본국민 양식 신뢰...우경화 걱정 안해"

<리드 바꾸고 무라야마 전 총리 약력 등 추가>

(서울=연합뉴스) 지일우 기자 = "일본 국민들의 양식을 신뢰하기 때문에 우경화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개헌 움직임이 강해 걱정됩니다"

삼균학회(회장 조만제) 초청으로 방한한 올해 82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는 2일 연합뉴스와의 회견에서 최근 본격화되고 있는 일본의 개헌 움직임에 대해 "헌법 9조 개정은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반대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자민당 장기 집권체제 붕괴로 연립여당이 구성되면서 1994년 야당인 사회당 위원장으로서는 47년만에 일본 총리로 올랐다. 지금은 정계를 은퇴하고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아시아여성기금'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2차 대전중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도의적 책임이 있으며 지난 65년 한일협정에는 이런 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특히 자신이 한일협정 체결 당시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던 관계로 이 문제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면서도 "당시 협정이 원만히 체결되지 못해 오늘 날에도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1924년 규슈의 오이타(大分)현에서 어업을 하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오이타 시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무라야마 전 총리는 八자형으로 축 늘어진 양쪽 흰눈썹이 트레이드 마크.

정치인답지 않은 어눌한 말을 듣고 있으면 정치가라기 보다는 속세를 떠난 `隱者'처럼 보인다. 그 스스로도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냐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어릴 때부터 가사를 돌보고 고학으로 메이지(明治) 대학을 졸업한 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천신만고를 겪은 정치인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동기는.

▲ 삼균학회(회장 조만제) 초청으로 왔다. 삼균학회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지만 동의대 명예교수인 성병탁 박사의 논문을 보고 삼균학회에 대해 알게 됐다. 삼균주의는 민주사회주의의 이념인데 일본 사민당의 이념과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

-- 일본이 지난해 신방위계획대강을 채택하고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확대하는 등 군사대국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 자위대가 무장해서 외국에 나가는 것은 헌법상으로도, 국회결의상으로도 안되는 일이다.이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다.

--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은 전후 60년 동안 전쟁의 반성을 토대로 한 `평화헌법'을 유지해 왔다.나는 평화헌법하에서 축적돼온 일본 국민의 양식을 신뢰하고 있다. 극우 세력이 일부 있다고 해서 일본이 우경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개헌 움직임이 강력하다는 점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헌론은 헌법 9조를 개정해서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자는 것이다. 절대 반대다.

-- 총리 재임시절인 1995년 과거사를 반성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는데 그 배경은.

▲내가 총리로 있을 때 `전후 50주년'을 맞이했었다. 앞으로의 한일관계, 중일관계, 일본과 아시아 관계에는 역시 과거 전쟁의 상처가 많이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의 토대 위에서 일본이 나아갈 길을 찾지 않는 한 일본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과거를 겸허히 반성하고 사죄의 뜻을 표한 후 서로를 이해하며 우호국으로서 미래를 향해 가자는 뜻에서 당시 담화를 발표했다.

-- 지난 65년 한일협정으로 개별청구권이 사실상 소멸됐다. 청구권이 소멸한 것으로 보는가

▲ 한일협정 당시에는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은 모르지만 아마 그당시 회담에 관계했던 사람들은 한일관계를 생각해 잘 판단했을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그것(한일협정)으로 완전히 납득이 됐느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당시에 한국에도 일본에도 반대운동이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도 문제는 남아있다고 본다.

나는 협정에 반대했으니까(웃음). 나도 (최근 한국에서 공개된 한일협정 문서) 내용을 봤다. 그 내용에 따르면 위안부나 강제노동 문제에 대해 법률적으로는 협약으로 해결된 것으로 돼 있고, 해결됐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것을 놓고 (피해자들이) 소송을 하고 있지 않느냐..

-- 사할린, 위안부는 협정 회담서 거론안됐는데

▲ 거론은 안됐지만 공개된 사료를 보면 개인적인 문제를 포함해서 법률적으로는 전부 해결된 것으로 돼 있다.(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도 상당한 반대운동이 있었고 당시 일본 사회당도 이러한 한국인들의 입장을 알고 반대했었다.

-- 피해자 보상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돼야한다고 보는지.

▲ 일단 법률적으로는 한일협정에 의해 전부 해결됐다고는 하나 현실적으로는 위안부, 강제노동을 둘러싼 소송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완전히 해결됐다고는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가장 중요한 여성의 존엄을 훼손당하고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로 봐서는 도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나이들어 점점 세상을 떠나고 있고 하는 점을 감안할 때 생전에 보상을 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총리때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기금이 2007년 해산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산 후 계획이 있다면

▲ 기금 해산후 어떻게 할지는 아직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다. 현재 기금 이사회에서 검토중이다.(무라야마 전 총리는 현재도 기금 이사장이다.)

유감이지만 한국에서는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기금이 주는 돈을 받지 말자고 강력히 반대하는 단체가 있다. 기금을 만들기 전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도 했지만 이해시키지 못했고 오늘날까지도 이해를 해주지 않아 대단히 유감이다. 마지막까지도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정부와 기업이 공동 부담해 전쟁 피해자를 위한 기금을 운영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위안부 문제의 경우는 기업이 직적접인 관계가 없다.(일본) 육군이, 군이 필요에 따라 한 것이라는 사실이 맹백하게 드러났다. 군이 관여한 것이라면 이것은 공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들이 기금을 받았다고 해서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할 권리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송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얼마든지 소송할 권리가 있다.

다만 피해자들이 나이들어 아무런 보상도, 명예도 회복하지 못한 채 재판 결과를 기다리며 죽어간다는 것은 죄송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뜻에서 도의적인 책임에 입각해 가능한 한 보상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단지 기금만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정부도 보험의료 지원에 돈을 내고 총리도 사죄 편지를 피해자들에게 보내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하자..그런 뜻에서 기금을 만든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이 방법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강제 노동문제는 다르다

강제노동문제는 그간의 소송에서 이긴 경우도 진 경우도 있지만 기업이 연루돼 있기 때문에 위안부와는 다르다. 가능하면 정부와 기업이 돈을 내서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 기금을 만들어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하는 것이 해결 방법의 하나라고 본다

-- 삼균학회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했는데 일본내에서 이를 좋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그런 일 없다. 이번 행사는 한일 과거관계를 반성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한일 관계 증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양심적인 일본인이라면 이번 회의 참석을 사시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행사가 단순한 항일이나 반일행사였다면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ci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