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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정의’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5-01-31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정의’



[한겨레 2005-01-30 17:02:01]


[한겨레] 반론- 와다 하루키의 ‘무라야마 담화 이후 10년’ 칼럼을 읽고 우리가 요구하는 건 ‘국책’으로써 행해진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 ‘국가’로서 책임지는 것이다. 법적 측면에서 전후보상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와다 하루키씨도 도덕적 책임만 지면 정치적, 법적 책임은 뒷전으로 미뤄도 된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1월18일치 ‘무라야마 담화 이후 10년’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와다 하루키는 “일본은… 식민지배와 침략을 목적으로… 아시아 각국의 국민들에게 크나큰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나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사죄의 뜻을 표명한다”는 ‘무라야마 담화’를 무라야마 전 총리 이후의 총리들도 계승했다고 하였다.

한편, 현 고이즈미 총리는 ‘크나큰 손해와 고통을 받은’ 아시아 각국 국민들의 항의에도 ‘식민지배와 침략’을 목적으로 일본 정부가 동원한 군인만을 모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하였고 4월에 위헌 판결이 났을 때도 원고들을 ‘이상한 사람들’이라 말했다.

또한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펴낸 교과서 채택을 여러 학교가 거부했음에도, 한 도립고등학교에서는 채택되었다. 여러 모로 ‘공평과 중립’을 강조하는 공립학교가 이와 같은 행동을 했다. 즉, 일본의 일부 공적기관은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펴낸 교과서가 ‘공평하며 중립적이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 국민 과반수는 무라야마 담화를 지지해왔음에도, 자신들이 끼친 크나큰 손해와 고통에 대해서 조금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남경대학살에 관해 그린 만화가 그 사실 유무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서 내용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고, (일본이) ‘크나큰 손해와 고통’을 준 북한에 대한 여론을 보자면 ‘납치문제’ 해결은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응답이 20%에 불과한 데 비해 경제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응답은 70%를 넘어서고 있다.

바로 이것이 내 눈에 비친 일본사회다. 아무래도 나와 와다 하루키는 일본사회 현상황을 다르게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엄밀한 정의는 일단 제쳐두고, 일본인인 와다 하루키와 재일교포 2세인 나의 눈에 비친 일본사회의 모습이 이만치나 다르다는 것이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먼저 정치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무라야마 담화’의 주어는 ‘나’이지 일본 정부는 아니다. ‘개인’으로서의 입장과 ‘공인’으로서의 입장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우리들이 요구하는 것은 ‘국책’으로서 행해진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 ‘국가’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법적 책임의 관점에서 보면, 전후 보상문제는 아직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재일동포는 아직 일본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고, 군인연금이나 장애자연금을 지급받지 못한 채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며 일본 정부에 대해 ‘정의’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소송이 계속 패소하는 것은 일본 정부가 ‘국가’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원폭 피해자들을 둘러싼 소송이 히로시마고등법원에서 승소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이렇게 정치적 책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도덕적 책임이란 대체 무엇인가?

최근 일본에서는 미나마타병을 둘러싼 소송에 대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나왔다. 약 22년에 걸친 재판은 피해를 겪은 환자들에게 합의금을 받고 소송을 취하할 것인가, 받지 않고 대법원까지 상고할 것인가를 묻고 있었다. 병마와 차별에 시달린 환자에게 합의금을 받을지 여부는 힘든 결정이었다. 합의금을 받고 소송을 취하하면 국가로서의 정치적 책임, 법적 책임은 물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본 정부의 방식이다. 스스로의 정치적,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합의금’이라는 형식으로 결론을 짓고자 하는 것이다.

아시아여성기금은 이런 방식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피해자들은 보상을 하기 전에 먼저 국가로서의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해 온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장기화될 재판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쪽은 일본 정부가 아니라 원고들이다. 그러한 원고들에게 국가로서의 책임 대신에 배상금을 먼저 제시하겠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와다 하루키도 도덕적 책임만 지면 정치적, 법적 책임은 뒷전으로 미뤄도 된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들이 요구하는 것은 ‘정의’이다. 강유미/일본 오사카 ‘조선인 종군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회’ 변호사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