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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문서 `연내공개` 방침과 파장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4-11-27
한일회담문서 `연내공개` 방침과 파장

[2004.11.27]
정부가 그간 논란이 돼 온 한일회담회의록을 연내에 공개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일본 정부에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져 공개가 실현될 경우 파장이 예상된다.
정부는 특히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축으로 관련부처 차관이 참석하는 특별팀을 가동해 한일협정 문서의 공개시 예상되는 파장과 대책을 논의해 온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정부는 지난 2월 서울 행정법원이 한일협정 문서 공개를주장하는 시민단체에 일부승소 판결을 내린 데 이어 상급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예상되면서 일본측에 법원최종판결시 공개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동의를 요청해왔다.
그러던 정부가 최근 '연내 공개'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일의원연맹 측에서도 일본측 파트너인 일한의원연맹 측에 한일회담 회의록의 '연내 공개'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지원을 요청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소극적인 대처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로 급선회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배경에는 우선 2005년이 을사늑약 10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협정 체결40주년이라는 역사적으로 상징적 의미가 있는 해라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또 올들어 국내 과거사 문제 청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대(對) 일본 문제에 대해서는 저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국내일각의 여론을 의식한 데 따른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 단체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지난 8월15일부터 보름 동안 외교통상부 앞에서 한일회담 문서 공개와 피해자 보상문제 해결을 위한 대일 재협상 등을 요구하며 장기 철야농성을 벌였다.
참여정부가 역대 정부와 달리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에 전향적인자세로 돌아선 데는 이 같은 피해자 단체 등의 정부 성토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희생자유족회는 최근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일제 때군인,군속,노무자,여자근로정신대, 일본군 위안부 등으로 동원됐던 사람과 유족들의 생활 지원을 골자로하는'태평양전쟁희생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안'을 마련, 지난 6월 국회에 발의해 놓은상태다.
이 법안에는 여야 의원 117명이 발의자로 참여했다.
유족회 양순임 회장은 "한일협정 체결 40주년이 되는 지금이 정부가 일본을상대로 피해자 문제 해결에 발벗고 나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한일회담 회의록이 연내에 공개된다면 그 폭발력은 예상을 뛰어넘을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선 우려되는 것은 일본의 반응이다.
일본은 그간 회의록 공개에 반대한다는 게 원칙적 입장이라며, 대북 수교협상에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불가' 이유였다.
따라서 적어도 북한과 수교교섭이 타결될 때까지는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과 북한 간에는 지난 90년대부터 수교협상이 진행돼오고 있으며, 특히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일-북 수교협상에 역점을 두고있다.
일본측은한일회담 회의록이 공개될 경우 협상전략 노출을 우려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일회담 회의록이 공개되면 재협상 요구가 봇물 터진 듯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간 한일회담이 '졸속', '굴욕' 회담이었다는 비난을받아왔기때문이다.
특히 한일협상 당시 일본측은 일제강점시 한국인 피해자 실태를 개별적으로조사해 개별 보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으나 한국측이 배상금을 일괄적으로 받아 일괄처리하겠다고 밝히는 바람에 개인청구권이 차단됐을 정도로 불철저한 회담이었다는 점에서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내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당시 군사독재 정부 하에서 이뤄진 회담이었다고 하더라도엄연히 국가간에 이뤄진 포괄적인 '회담'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개인 청구권문제에대해 일본과 재협상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또 한일협정 체결 이후 60년대에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그리고 상업차관3억달러 등 모두 8억달러를 일본 측으로부터 건네받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이 돈은 당시 포항제철 건설, 고속도로 건설 등의 경제개발 자금으로 쓰였다.
그리고 70년대 중반에 징용사망자 8천552명에게 1인당 30만원, 일본 정부발행의 유가증권 9천700여건에 대해서도 1엔당 30원으로 환산해 지급한 바 있다.
그러나당시 국내 여건으로 볼 때 이러한 피해 보상은 극소수에 한정됐을 것으로 보인다.
민간단체들은 일제때 강제동원돼 사망, 부상 등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따라서 한일회담 회의록이 공개되면 피해자들의 추가배상 요구가 잇따를 것으로예상돼, 이 또한 국가적.외교적 '대사'(大事)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부의 한일회담 문서공개는 피해자의 보상 요구를 어느 정도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피해자들이 일본 측으로부터 개인적인 배상을 받지 못하는것은한일회담 당시 정부가 일정 정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의미도 포함된 듯 하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피해 구제시 소요될 재원 규모와 피해 구제시의 관련보상입법체계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 일본 측의 대응이 주목된다.
일본측이 표면적으론 한일회담은 외교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피해 구제 문제의 책임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