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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낙엽도 목메어 떨어지리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4-11-20
뉴욕의 낙엽도 목메어 떨어지리

[조선일보 2004-10-24 17:48]


연극 ‘위안부’ 오프 브로드웨이서 공연
위안부였던 뉴욕할머니와 서울할머니 대화통해
수십년 恨과 분노, 오늘의 문제로 생생히 되살려


[조선일보]

세계2차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가 세계 문화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다. 연극 ‘위안부(Comfort Women)’는 일본에 강제로, 또 속아서 끌려갔던 한국 처녀들의 비극을 할머니가 된 그들의 시점에서 풀어내는 무대. 뉴욕 맨해튼 30가(街) 259번지 ‘어번 스테이지스 극장(Urban Stages Theatre)’에서 28일 개막하는 이 공연은 에미상 후보에 올랐던 재미(在美) 한국인 극작가 김정미씨가 극본을 썼고, 어번 스테이지스 극장 소유주이며 예술감독인 프란시스 힐(Hill)이 연출을 맡았다.

지난 주말, 무대에서는 중국인과 한국인 여배우들이 구슬땀을 흘리면서 연습에 한창이었다. 주인공 할머니 역은 에미상 후보에 올랐던 중국계 배우 티나 첸(Chen)이 맡았다. 등장인물 5명 중 컬럼비아대학 출신의 젊은 한국인 여배우가 2명 캐스팅됐다.


연극은 뉴욕에 살고 있는 한국인 할머니가 뉴욕대학에 재학 중인 손녀딸(김지영)의 끈질긴 설득 끝에 UN 본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두 명의 위안부 할머니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세 할머니들의 말다툼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려진다.


“배상을 받아야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서울 할머니들) “한국인들도 이해해 주지 않는데 그런 것을 뒤집어서 무엇하냐. 쓸데없는 일이다. 왜 돌아다니면서 돈을 구걸하느냐.”(뉴욕 할머니)


실은 뉴욕 할머니가 과거 위안부였다는, 숨기고 싶었던 사실이 들통나면서 연극은 극적인 전기를 맞는다. 뉴욕 할머니가 과거사 악몽을 꾸면서 일제의 만행이 폭로되고, 50년이 넘도록 분노와 수치심을 가슴속에 묻고 살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과 아픔은 오늘의 문제로 생생하게 객석에까지 전달된다.


힐 감독과 주연배우 첸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계속 눈물을 글썽거렸다. 첸은 “자신의 과거를 마지막 순간까지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뉴욕 할머니의 심정을 드러내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털어 놓았다.


연극은 이제 할머니가 된 여성들의 비극을 넘어 일본 정부의 부도덕을 겨냥한다. 작가 김씨는 “일본이 정식 사과도, 배상도 않으면서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 가입 추진 등 국제사회를 이끌려고 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힐 감독은 “이 연극은 전쟁 범죄가 얼마나 비인간적이며 인간의 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면서 “역사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위안부’는 작가 김씨가 1994년 단막극 극본으로 완성해 1995년 USC 제롬 로렌스 단막극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던 작품. 작가는 이후 한국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 장막극으로 극본을 보완한 뒤, 1999년 미국 LA의 ‘이스트 웨스트 플레이어스 극장’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한 달간 공연한다.


(뉴욕=김재호특파원 [ jae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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