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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실과 화해의 역사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4-11-09
<신문로 칼럼>역사의 진실과 화해의 역사(임현진 2004.11.08)

[내일신문]

역사의 진실과 화해의 역사

임 현 진 서울대학교 교수·정치사회학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이자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과거를 잊은 미래, 혹은 미래를 저버린 과거가 존재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미래와 과거를 이어주기란 쉽지 않다. 과거는 돌아갈 수 있지만 다시 만들 수 없고, 미래는 찾아갈 수 없지만 새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통찰력과 상상력 없이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현재를 살아가기 어렵다.

조만간 우리는 역사청산 문제에 부딪치게 되어 있다. 열린우리당은 일제부터 해방을 거쳐 지금까지 국가 공권력 행사로 인한 인권침해 및 불법행위에 대한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을 제정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진실·미래·화해 위원회’라는 국가기구를 설치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수립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된 역사청산이 없었다는 점에서 공식적 기구의 설치는 일단 고무적이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과거를 정리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과거사 진상규명이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이견과 비판이 없지 않다. 그러지 않아도 국보법을 비롯한 4대개혁 입법을 둘러싸고 보혁대립이 심한 상황에서 과거사 정리라는 역사청산이 자칫 분열과 혼란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남아공 ‘진실과 화해위’의 교훈

과거사 정리라면 남아공의 경험이 매우 유익하다. 인종차별정책으로 악명이 높았던 남아공화국. 흑백사이의 결혼은 물론 주거조차 허용하지 않은 남아공화국에서 흑인은 아예 백인 지역의 출입조차 금지되었었다.

만델라로 상징되는 새 민주정부는 동구와 중남미 국가들의 역사청산 선례를 참고하여 ‘진실과화해위원회’를 1995년 구성하였다. 이 위원회는 1960년 3월 1일에서 1994년 5월 10일 사이에 남아공화국 국내외에서 발생한 중대 인권침해사건의 구체적 상황, 원인 등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동기를 통해 조사하여, 가해자의 경우 정치적 동기를 가진 경우에 한해 사실을 전면 밝히는 것을 조건으로 사면을 부여하고, 그리고 희생자의 행방을 조사하여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존엄성을 회복할 기회를 마련하고 적절한 보상책을 정부에 권고하는 목적을 제시했다.

남아공화국의 경험이 돋보이는 것은 2년에 걸친 청문회를 통해 수천명에 이르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증언을 국민들에게 7개 언어를 통해 전달했다는 사실이다. 개인 혹은 집단으로만 공유된 기억이 ‘진실’로 인정되면서 공식역사의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기억의 회복을 통해 역사의 복원을 이룬 것이다.

진실규명은 개인의 차원에서 시작하여 당시의 모든 사실적 진실을 알아냄으로써 서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대화를 통해 성립하는 진실’을 밝히려 했다. 백인정권 뿐만 아니라 해방운동측의 폭력도 가해자로 포함되었다. 화해를 위해 두 편의 과오는 형평의 원칙에 의해 다루어졌다. 개별적 사면방식을 통해 가해자의 협조와 진술을 얻고 책임소재가 희석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사회전체가 과거의 갈등으로부터 벗어나 미래의 통합을 위해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이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결국 남아공의 경험은 진실과 화해가 현재진행형임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진실과화해위원회’는 진상규명과 개별사면이라는 상충적인 과제를 해결하여, 과거청산을 위한 ‘진실’찾기와 미래건설을 위한 ‘화해’조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역사청산은 지난한 과제다. 그러나 과거사 정리를 성취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의 격차는 매우 크다. 불란서는 세계대전 종전 직후 바로 역사청산을 시도하였다. 민족이 반민족을 응징한 사례다. 불란서는 국가정체성의 확립을 통해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의 역사청산이 어려운 이유는 민족에 이념이 추가되어 있다. 과거사 규명이 쉽지 않은 까닭은 이념의 잣대가 민족에 추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여전히 이념적으로 갈등하는 기억들로 싸여있다.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은 역사청산에서 성공적이지 못했다. 과거 군부독재정권 시절의 가해자들이 진실고백 없이 책임모면만을 위한 화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갈등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 봉합되었을 뿐이다. 여전히 사회정치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배경이다.

우리의 경우 근현대사의 정리는 간단치 않다. 해방전후의 역사 중 일부는 편향적이다. 공식역사와 수정주의 사이 역사해석의 차이가 있다. 공정성과 형평성과 객관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대정신과 역사관에 관한 논의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기록, 증언, 문서를 확보하는 것이 화급하다.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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