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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진상규명 어떻게 되고 있나] 日軍 위안소 대책 아소 보고서 충격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4-10-31
[일제 강제동원 진상규명 어떻게 되고 있나] 日軍 위안소 대책 아소 보고서 충격

[국민일보 2004-10-31 17:21]


남경(南京)대학살로 유명한 남경전이 종료된 직후인 1938년 초,아소 데츠오 군의는 군특무부로부터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다. 곧 개설될 ‘육군오락장’을 위해 대기중인 부녀자 백여명의 신체검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 육군오락장은 38년 1월 상해(上海) 근교에 개설되어 최초의 군 직영 위안소로 알려져 있는 ‘양가택(楊家宅) 육군위안소’이다.

아소 군의가 ‘화류병의 적극적 예방법’이란 제목으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39년 6월. 중국 전선에서 일본군 병사들에 의한 성범죄가 빈번히 발생하여 중국인들의 적대의식이 높아져 점령지 치안유지가 곤란해질 것을 우려,그 대책으로 군위안소 개설이 확대되던 시기였다.

산부인과 의사인 아소 군의는 제11군 제14병참병원에 소위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군직영 위안소의 조선여성 80명,일본여성 20명을 검진한 결과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아소는 검진결과 군위안부로 징집된 조선여성들은 일본여성들과 달리 성병력이 있는 자는 극히 소수이고 나이도 어리고 매춘을 경험하지 않은 자들이 많은 것을 근거로 전장에 필요한 군위안부로 저연령의 여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소보고서는 이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로 나이 어린 조선여성이 높은 비율을 차지했을 것이라는 근거자료가 되기도 한다.

또 군이 위안부와 위안소,위안소경영자를 엄격한 통제감독하에 두는 ‘군용 특수위안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병사들이 위생적으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위안소로서 갖추어야할 조건,성병 예방을 위한 대책 등을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