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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계 거목들의 친일 작품 공개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4-10-04
한국미술계 거목들의 친일 작품 공개



[오마이뉴스 최윤수 기자] 독재정권하에서 금기시되었던 과거사 청산문제가 반민특위의 좌절 이후 반세기를 넘기고서야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고 있는 가운데, 오욕의 역사를 미술로 돌이켜보는 의미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가혹했던 일제 식민지배의 실상을 고발하고 일제잔재를 청산하려는 취지에서 관련 기관 단체와 함께 해마다 기획전시회를 개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식민지조선과 전쟁미술­전시체제와 민중의 삶' 전을 열고 있는 것.



▲ 이번 전시를 기획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상임연구원 박한용씨가 개막식에 참석한 내빈들에게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2004 최윤수

이번 전시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10일까지 열흘간 계속되며, 서울 전시가 끝난 후 독립기념관·전주역사박물관 등에서 전국 순회전시를 벌일 예정이다.

일제식민통치의 잔혹성이 극에 달했던 ‘전시총동원체제기(1937~1945년)’를 중심으로 한 이 전시는 일제의 ‘전시파시즘미술’을 개관하고,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 찬양한 ‘친일미술’의 실상을 반성적 의미에서 살펴보고 있다.

이와 함께 징병·징용·정신대 등 각종 인력 수탈과 공출 등 물자수탈에 시달리던 전시체제하 조선 민중들의 고난에 찬 삶도 돌아보고 있다.



▲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대문형무소는 일제 시절의 치욕과 한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다.

ⓒ2004 최윤수

특히 일제의 각종 선전물을 비롯한 다양한 시각자료와 각종 생활자료를 실물로 전시해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상을 실감 있게 재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침략전쟁의 만행을 폭로하고 이에 협력한 친일파의 죄상과 그들이 끼친 악영향을 조명함으로써 왜곡된 진실을 규명하고 올바른 역사에 기초하여 반성과 화해를 추구함을 목표로 하는 과거청산과 민족사 정립에 기여하는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전시에서는 각종 전쟁을 주제로 한 그림을 비롯한 일제의 전시체제하 동원 미술과 그간 친일 여부로 논란이 일었던 김은호, 김기창, 김경승, 심형구 등 한국미술계 거장들의 구체적인 부일 협력 행적과 작품 활동들이 가감없이 고발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 역사관으로 개조된 서대문형무소의 모습이 보존된 전시관 내부 모습

ⓒ2004 최윤수

전시 구성은 일제의 미술정책·전시체제하 동원 미술·친일미술의 전모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제강점기 수탈상과 강제동원의 참상을 증언해 주는 실물 자료도 다수 전시된다.

특히, 이완용 등 매국노의 서예 작품, 애국기 헌납을 독려하는 박득순의 전쟁화 ‘항공기’ 등이 원본으로 공개 전시되며 일제의 성전화첩, 청일전쟁·러일전쟁 화보, 한일합병 기념화첩, 반도지광·소국민·신시대 등 친일잡지와 조선미전·만주미전 도록 등 일제강점기 미술계의 친일 동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료들도 소개하고 있다.

이로써 일제하에 민족을 배신하고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데 앞장섰으면서도 지금까지 존경받고 있는 대표적인 미술인들의 반민족성과 기만성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묻고 있다.



▲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식민지조선과 전쟁미술전’의 개막식

ⓒ2004 최윤수

실물자료로는 천인침·봉공대·무훈띠·지원병입소 기념 깃발 등 징병·징용 자료, 방공카드·방독면 등 전시통제생활 유물, 신사참배 등 내선일체 황민화정책을 선양하기 위한 그림엽서, 공출·배급·국방헌금 자료 등 다양한 물품이 전시된다.



▲ 그동안 친일진상규명에 앞장서 온 인사들이 많이 참석했다. 김원웅의원의 방명록 기록이다.

ⓒ2004 최윤수
그 외에도 특별전시 코너에는 일본 내의 우경화 분위기로 인해 최근 일본 전시가 취소되었던 ‘해남도 특별전’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중국 해남도에서 학살된 수천 명의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와 관련된 사진전으로, 일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의 잔혹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국내 대표적인 화가들이 일제 전시총동원체제기에 자신들의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글씨, 만화, 포스터, 신문기고, 작품전 등을 통해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미하고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정책에 어떻게 호응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일제가 침략전쟁에 한국인을 동원하기 위한 선전활동에 어용 미술단체와 작품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친일미술의 활동 연표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 전시회에 자녀들을 데리고 온 시민이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2004 최윤수
특히 대표적인 친일파로 악명이 높았던 매국노 이완용 등이 일본 관리의 회갑에 바쳤던 ‘축시’라는 서예작품과 이당 김은호의 ‘금차봉납도’, 김은호의 수제자로 대중으로부터 가장 애정을 많이 받으며 천재작가로 평가받는 운보 김기창의 ‘총후병사’, 서울대 미대를 창립하고 동양화의 대가로 대접받는 노수현의 만화 ‘멍텅구리’, 일본 종군작가로 활동했던 김종찬의 ‘진중의 A병단장’, 1944년 일제시대의 마지막으로 개최된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 창덕궁상 수상작이었던 윤효중의 ‘현명’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일제의 성전화첩, 청일전쟁·러일전쟁 화보, 한일합병 기념 화첩, 반도지광·소국민·신시대 등 친일잡지도 전시되어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노골적인 친일행위를 알 수 있게 했다.

이와 함께 폭압적 전시체제에서 민중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실물자료와 그림 다수와 중국 해남도에서 강제동원되어 학살된 수천 명의 조선인들을 담은 기록 사진도 최초로 공개됐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박한용 상임연구원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화단을 대표한다는 화가들이 일제의 각종 침략전쟁과 희생을 강요하는 전쟁 파시즘 선전미술을 통해 적극적이고 노골적으로 친일부역에 앞장섰음을 알리고, 미술계의 주류인 원로 미술인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동안의 친일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 관람객들이 조선박람회기념 경성시가도에서 지금의 거리와 건물들의 위치를 찾아보고 있다.

ⓒ2004 최윤수




▲ 일제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등의 기록으로 가득한 전시총동원 때의 일장기

ⓒ2004 최윤수




▲ 민족문제연구소의 조문기 이사장이 대표적인 매국노 이완용의 '축시'라는 서예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04 최윤수




▲ 전시총동원과 전쟁에서 공로를 세운 자에게 내렸던 일제의 하사품

ⓒ2004 최윤수



운보 김기창의 <적진육박>




ⓒ운보 김기창
김은호의 수제자로 대중으로부터 애정을 가장 받으며 천재작가로도 평가받는 운보 그린 '총후병사'는 완전군장한 채 휴식을 취하는 병사의 얼굴과 손에서 결전의 의지가 느껴진다.

김기창은 반도총후미술전 초대작가였으며 1943년 8월 매일신보사가 참전을 독려하기 위해 기획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에 작품을 냈다.

또 1944년에는 일본이 전시총동원을 독려하기 위해 개최한 결전미술전에서 조선군보도부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기창은 총후병사와 관련해 “정식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삽화에 불과해 친일한 작품으로 불 수 없다”고 친일작품행위를 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김기창의 작품으로 발굴한 '적진육박'은 착검한 채 육박전을 치르러 돌진하는 황군을 실감나게 표현한 대표적 친일작품으로 그동안의 친일논란을 잠재울 것으로 평가받는다. / 최윤수





/최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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