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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나라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4-09-14
참 이상한 나라

[한겨레 2004-09-09 19:21]

[한겨레] 참 이상한 나라다. ‘동학란’이 ‘동학농민혁명’으로 인정받게 되는데 무려 110년이 걸렸다. 그런데 동학농민혁명의 주적은 처음엔 부패탐관오리 청산이었다. 그 주적이 최종적으로는 외세 그 중에서도 일본침략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이 무너지고 결국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해방’이 되었다. 해방이란 폭력과 폭압이 있었다는 것이며 거기에서 해방이 되었으면 그 폭압·폭력에 대한 응징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광복’도 마찬가지다. 어둠에서 빛을 되찾았다는 것은 암흑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암흑기의 폭력·폭압 집단은 일본이다. 동학농민혁명이 동학란이 되게 만든 가장 큰 주역 역시 일본이다. 당시에는 모든 것이 일본이었다.

이 질곡의 역사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도 청산은 커녕 그 일제에 부역하면서 제 나라 제 민족을 혹독하게 혹사시키고 잡아서 처형하는데 앞장섰던 무리들이 재집권을 한 이상하기 그지없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현재의 우리나라 주적이 북한이란다. 그 주적을 옹호하거나 동조한 사람들을 처벌·처형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반공법이고 국가보안법이다. 그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에 무수한 사람이 잡혀 들어갔고 고문당했으며 감옥살이를 하고 죽어갔다. 주적이 북한인 한 당연하다.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에 가서 김정일과 악수를 했고 대단히 많은 돈도 주었고 식량을 비롯한 숱한 도움을 주었다. 사형을 당해도 몇 번을 더 당해야 할 사람인데 그렇지 못했을 때는 감옥에도 가고 사형언도도 받았지만 그렇게 한 다음에는 오히려 칭송을 받고 있다.

참 웃기지도 않는 나라다. 금강산 여행을 간 사람은 한 사람 예외 없이 북한을 도운 사람이며, 소 떼 방북, 개성공단 등에 관계된 사람은 사형을 넘어 능지처참 되어도 모자랄 사람들인데 모두가 멀쩡한 나라가 이 나라다.

실소를 넘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이런 현실 속에서 국가보안법은 존치되어야 한다는 법관들의 주장이다. 그것도 헌법재판소에서 편을 들고 대법원의 대법관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된 나라인가? 친일반민족세력이 고위층을 독식하고 있을 때 반공법에 묶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좌제에 걸려 처참하고도 비참하게 망가진 삶을 지탱해야 했는가? 그런데 친일, 반민족 세력은 연좌제는커녕 잘먹고 잘입고 잘가르치고 잘배우며 승승장구했고 지금도 권력의 핵심에서 법을 만들고 집행하면서 ‘정체성’을 따지며 달라들고 있다. 친일 청산을 위한 연좌제는 고사하고 친일 행각의 주범이 친일 청산의 대가로 일본 돈을 받아 정권 재창출을 했다는 나라가 이 나라다. 일본군 위안부들에 대한 보상을 일본이 거론하니까 그것은 우리가 할 일이니 당신네들은 가만있으라고 했다는 나라가 이 나라다. 그러면서 ‘정체성’을 따지고 달라든다.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이상한 나라다.

그런 기득권자들이 국회의원이고 당 대표며 장관을 해먹었고 그런 판·검사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이 나라에서 이런 말을 하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필자 본인은 분명 찬양·고무죄에 이적표현을 한 사람으로 국가보안법에 묶여 들어가야 한다. 그것도 전 안기부의 후신인 정보원에. 두고 볼 일이다.

단 하나의 희망이 있다. 동학농민혁명이 패하여 이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일제를 청산하지 못한 채 지금 이토록 휘청거리고 있지만, 이는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기득권의 세력에 의해서지만, 동학란이 동학농민혁명으로 바로 잡히듯 역사는 퇴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잠시 역행하고 퇴행한 듯한 경우도 있지만 강물의 흐름은 막지 못한다. 지금의 기득권 세력은 언젠가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게 되며 그 아버지, 그 할아버지와 함께 심판 받게 된다.

그 희망이 오늘 나를 살아있게 하는 희망이다.

한병옥/남원경실련 집행위원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