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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거주 위안부 귀향취재 동행기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4-04-26
중국거주 위안부 귀향취재 동행기

[한겨레 2004-04-08 21:24]


[한겨레] 접촉 경위서…여행증명서…
60년 세월의 장벽 조마조마 ‘32억 아시아인을 하나로!’라는 구호 아래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이어 강제이주 고려인 문제를 다뤄온 문화방송 <느낌표!>의 ‘아시아!아시아!’ 팀이 이번엔 중국 거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위안부 출신 곽예남 할머니의 국내 가족을 산고끝에 찾아낸 제작진은(한겨레 2월23일자)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지난달 29일부터 4월1일까지 할머니를 인터뷰하고 그의 입국을 추진하는 장면을 담은 현지 촬영을 마쳤다. <한겨레>가 이들을 동행취재했다.
난징 시장통에 위안소 건물 #첫날 오전 11시께 인천국제공항에 윤정수가 “활동하기 편하기 때문”이라며 파란색 칠부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공항 관제탑을 배경으로 한국정신대연구소의 서은경 연구원과 함께 찍은 출국 장면 촬영은 순식간에 끝났다. 이민호 피디가 주 촬영을, 이상헌 피디가 보조 촬영을 맡아 8㎜ 카메라를 들고 시작한 지 10여분만에 후딱 해치우고 잽싸게 출국장을 향해 떠났다. 치고 빠지는 그 기민함이 게릴라식이다. 이런 게릴라식 촬영은 돌아오는 날까지 죽 이어졌다.

떠나는 데 윤정수가 한마디를 보탰다. “위안부란 주제는 너무 무거워. 그래서 나하고 딱 어울리지.” 이륙 2시간 만에 난징 공항에 착륙한 제작진은 도착신을 간단하게 촬영한 뒤 마중나온 이 지역 장수티브이 관계자들과 함께 난징대학살기념관으로 향했다. 장수티브이는 곽 할머니의 존재를 최초로 알린 장수성 관영 방송사. 가는 도중에 한국과 통화한 이민호 피디가 아연실색했다. “곽 할머니 만나려면 통일부 허가를 따로 받아야 한다는데요” 할머니의 국적이 ‘조선’이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촬영을 접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휴관일임에도 직접 관장이 나와 설명까지 해준 기념관을 출발해 난징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위안소 건물로 가는 버스에서 다시 이 피디의 흥분한 목소리가 퍼졌다. “통일부에서 접촉허가가 났답니다. 대신 경위서 하나 쓰랍니다.” 현지에 나와서도 늘 상황이 이처럼 유동적이라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난징시 태평남로 시장통에 있는 쇄락한 위안소 건물 촬영을 끝으로 첫날 일정을 접어야 했다. 장수티브이쪽 초청을 받아 저녁을 대접받은 뒤 숙소로 가는 도중 길가의 경찰차를 보고 윤정수가 농담을 건넸다. “여기도 촛불집회가 있나보군.” 세상에서 사라진 '조선' 국적 #둘째날 다음날 아침 6시30분부터 일정이 강행됐다.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상해에 있는 총영사관. 이 곳에서 곽 할머니의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조선’이란 국적은 남한과 북한의 단독정부 수립과 함께 소멸해버린, 사실상 세상에 없는 국적이기 때문에 할머니의 한국 입국을 위해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여행증명서(일종의 임시여권)가 필요하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김창남 영사와의 촬영도 20여분만에 ‘게릴라식으로’ 신속하게 끝냈다. 김 영사가 너무 쉽게 발급의사를 내비치자 “카메라에 대고는 (발급이) 조금 힘들지만 최선을 다하겠다 정도만 해주세요”라며 이 피디가 부탁하고 나섰다. 프로그램의 긴장을 위해 조금 첨가되는 ‘연출’이다.

그러나 여행증명서는 촬영을 마치고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여차하면 당일 발급이 안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윤정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일정이 아니라 이런 것 때문에 힘들어요. 말하자면 얼음깨고 에베레스트 올라가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입산을 막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방해가 더 힘들다는 얘기죠.” 기다림 끝에 오후 4시가 가까워 여행증명서가 발급됐다. 큰 산은 넘은 셈이다. 다시 차를 달려 난징으로 돌아오니 한밤중이다.

출국확인도장 요구에 긴장 #셋째날 어제에 이어 아침을 거른 채 7시에 난징을 출발, 이번엔 자동차로 5시간 이상을 달려 곽 할머니가 사는 안후이성 수조우시로 갔다. 먼저 현지 공안국에 들러 곽 할머니가 여행증명서를 갖고 난징 공항의 출국 수속대를 나갈 수 있는지 점검해야 했다. 담당자는 거듭 “문제 없다”고 확인했다. 그런데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제작진이 집으로 찾아가야 할 할머니가 며느리 리슈핑과 함께 택시를 타고 공안국으로 와버린 것이다. 담당자 설명이 끝난 뒤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택시에 태워 먼저 보내야 했다. 이것도 악의 없는 연출에 해당한다.

곽 할머니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할머니와 함께 다시 난징으로 돌아오는데 차가 갑자기 멈췄다.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에 지친 버스 운전사가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휴게소로 들어와버린 것이다. 사실 중국 일정 가운데 잠자는 것 빼고 보낸 시간의 절반 이상은 버스 속에서 소비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루한 이동 그리고 상봉 준비 과정의 돌발 변수가 이 프로그램 제작의 가장 큰 어려움처럼 느껴졌다. 윤정수가 본인이 직접 운전대를 잡겠다고 나섰지만 동행한 장수티브이의 안디앤쳉 피디가 “더 불안하다”며 말렸다.

그러던 중 또 사건이 터졌다. 아까 만난 수조우시 공안 담당자가 “다시 알아보니 헤이페이시에 있는 공안국에서 출국 확인 도장을 받아야 곽 할머니가 출국장을 빠져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전화를 해온 것이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난리가 났다. 헤이페이시는 난징에서 차로 2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데다 이미 해는 저물고 있었다. 1시간여 지속된 ‘버스 속 난상토론’은 결국 “이 상태로 출국 가능”이라는 난징 공항 공안 쪽의 재확인을 거쳐 일단락됐다. 제작진의 이어지는 한숨 속에 버스는 난징의 밤거리를 달렸다.

곽할머니 국적회복 추진 #마지막날 긴장된 가운데 곽 할머니는 무사히 출국 수속대를 빠져나와 서울행 동방항공에 몸을 실었다. 1940년대 초반 위안부로 끌려갔으니 그야말로 ‘60년 만의 귀향’이다. 할머니가 가족을 찾고 한국에 모시고 오기까지, 국가가 돌보지 않은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가 인생의 황혼녘에 작은 기쁨을 누리는 일은 ‘아시아!아시아!’ 제작진의 진정성 어린 프로 정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나아가 할머니의 국적 회복을 추진중이다.

난징 상하이 수조우/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