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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할머니 60년뒤에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앓아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4-04-22
위안부할머니 60년뒤에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앓아
[한겨레] “과거 꺼내기도 싫다”잦은 악몽·화병 호소연대 의대 26명 심리검사

“지금도 짐승같이 덤비는 일본군인을 두손과 두발로 밀치며 죽을 힘을 다해 반항하며 악을 쓰는 꿈을 꾸다 내가 지르는 소리에 내가 놀라 잠에서 깨곤 한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 가운데 일부가 해방 60년이 다 되가도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세대 의대 의학행동과학연구소(소장 민성길 교수)는 지난해 6∼8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26명을 상대로 심리 검사를 벌인 결과 8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로 진단됐다고 21일 밝혔다. 또 26명 전원이 과거에 이 병을 앓았으며, 일부는 환자에 준하는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외상적 사건)에 직면 한 뒤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를 가리키는 것으로, 과학적인 검사 결과를 토대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 대상자 26명 모두는 ‘아직도 과거의 상처와 관련한 생각이나 대화를 회피하고 싶다’고 밝혔으며, ‘괴로운 기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미래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 ‘잠들기가 어렵다’는 대답도 96%(25명)나 됐다.

이들은 또 내면에 어떤 감정이 있는가를 검진하는 ‘로샤 검사’에서 일반인들이 꽃이나 나비 등으로 보는 불규칙한 무늬를 ‘여자 자궁을 잡아당기는 짐승 같은 남자’나 ‘일본인이 처녀를 끌고 가는 것’, ‘자궁에서 피가 나고, 일본 놈들이 장한 듯이 느끼는 것’ 등으로 대답했다. 연구진은 이런 격렬하고 적나라한 성적 반응은 왜곡된 성 경험 때문에 분노와 공격성이 심각하게 내재화된 탓이라고 설명했다.

위안부 생존자들은 또 분노를 잘 참지 못할 뿐 아니라, 만성 우울증, 수치감, 죄의식, 분노, 홧병 등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일본군 위안부로서의 경험이 일반적인 성폭력 피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할머니들의 인생에 매우 부정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미쳤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민성길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심층 면담과 검사 등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위안부 생존자들을 조사한 첫 사례”라며 “위안부 보상 문제와 관련해 위자료뿐 아니라 치료비까지 청구할 수 있는 의학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미향 정신대문제 대책 협의회 사무처장은 “일본정부가 위안부들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조차 인정하고 있지 않아 당장 치료비까지 청구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정신과 진료를 돕고, 장기적으로 일본에 치료비 보상까지 청구할 수 있는 근거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