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에드워드 브라운스타인 뉴욕주하원의원 나눔의집 방문”
[의원소개]
성명 : 에드워드 브라운스타인 (Edward Braunstein)
직위 : 뉴욕주 하원의원(민주, 26선거구)
Democratic Member of the New York State Assembly from the 26th District, Northeast Queens
나이 : 1981년 4월 21일 (만36세)
학력 : 뉴욕주립대 알바니 캠퍼스 학사(금융학 전공)
뉴욕대(New York Law School) 법학석사
경력 : 변호사
Assembly Speaker’s New York City office 입법보좌관
뉴욕주 하원의원 (2010 ~ 현재)
에드워드 브라운스타인 의원는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욕 퀸즈의 26선거구(the 26th District in Northeast Queens) 하원의원으로 2013년부터 매년 ‘동해법안’을 뉴욕주 의회에 상정하고 있는 대표적인 친한파 의원이다. 에드워드 브라운스타인 동해법안은 뉴욕주의 공립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에 동해를 일본해와 병기하고, 병기가 불가능할 경우 동해를 단독으로 표기할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2017년 3월 현재 뉴욕주 하원 교육위에 계류 중이다.
에드워드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본인 선거구에 많이 거주하고 있는 유대계 주민, 특히 제2차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통해 전시 비인도적 범죄(crime against humanity)와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본인의 지역구의 한인들의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노력과 목소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그들을 노력에도 동참하게 되었고 말한다.
2013년 에드워드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일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전시에는 위안부가 필요했다'는 발언에 항의하여 한국계 론 김 뉴욕주 하원의원과 함께 뉴욕 유엔주재 일본대표부 앞에서 시위를 주도하여 “세계인 모두가 위안부의 참상에 대해 하시모토 시장이 거짓말하는 걸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사죄를 요구한다”고 주장하였고, ‘시민참여센터·홀로코스트센터 결의안’ 마련하여 뉴욕 한인 시민참여센터와 커퍼버그 홀로코스트센터에서의 위안부 관련 교육(동북아역사인턴십)을 지원하는 노력 등을 하였다. 그는 “일본은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며 학생들은 동북아역사인턴십 과정을 통해 습득한 올바른 역사를 전달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고 주장한다.
이번 에드워드 브라운스타인 의원의 나눔의집 방문은 의원 본인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한국 외교부 초청으로 방한한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과거 뉴욕 홀로코스트 센터에서 열린 행사에참석하셨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이번 한국 방문을 계기로 할머니들을 직접 뵙고자 외교부에 나눔의집 방문을 요청하여 이번 일정이 마련되었다.
나눔의집을 방문한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지역구 한인사회의 일본구’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깊이 공감하며 책에서만 봤던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피해 사실을 자신이 직접 역사의 현장에서 피해자들 만나고 느끼고 싶었다”고 방문 동기를 밝혔다.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은 1시간 정도 둘러보고 김군자할머니(1926), 박옥선할머니(1924), 이용수할머니(1938), 하점연할머니(1922) 와 30여분의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할머니들이 2015년 12월 28일 있었던 한일간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는 잘못되었고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는 말씀에 브라운스타인 의원도 할머니 말씀에 적극 공감하고 이 문제는 피해자 입장에서 해결되어야 하고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함으로써 피해자분들의 아픈 상처가 치유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정확히 역사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에드워드 부라운스타인 의원의 가슴에 나눔의집을 상징하는 뱃지를 달아주고 고 김순덕할머니의 그림 ‘끌려감’ 액자를 선물하였다.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직접 와서 피해자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듣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고 하면서 할머니들을 만나고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방문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그 당시의 아픔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을 일인데 그런 슬픔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뛰어 넘어 기록하고 전하며 극복하는 것이 큰 귀감이 된다고 하면서 앞으로도 자신의 지역민과 학생들에게 바른 역사교육 특히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같은 인권문제에 대한 교육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