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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집' 대표이사 송월주 큰스님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14-05-12
"겉만 번드르하지 윤리의식 부족하고, 도덕성도 실종돼 속은 다 비어있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리모델링해야 합니다."

월주(月珠·79) 스님은 지난 9일 서울 광진구 영화사(永華寺)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이렇게 말했다. 2003년부터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들을 돕는 지구촌공생회를 이끌고 있는 월주 스님은 "우리가 돕는 나라에서 한국은 '성공한 나라, 가보고 싶은 나라, 취업하고 싶은 나라'로 본다"며 "우리가 돕는 나라에 실망을 줘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스스로 대단한 나라인 줄 환상에 취해있다가 당한 일"이라며 "세계 10대 교역국에, 한류(韓流) 효과까지 있으니 준비 없이도 (사회가) 요행수로 돌아갈 줄 착각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대통령 퇴진 등의 주장에 대해 "대통령이 '무한책임을 느낀다' '대안을 갖고 사과하겠다'고 했으니 우선 그 대안의 내용을 보고 부족하면 비판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불교 원로 월주 스님(지구촌공생회 이사장)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세월호 참사로 생긴 혼란과 갈등을 큰 거울 삼아야 한다”며“지금은‘올바르게 살아보세’같은 정신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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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원로 월주 스님(지구촌공생회 이사장)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세월호 참사로 생긴 혼란과 갈등을 큰 거울 삼아야 한다”며“지금은‘올바르게 살아보세’같은 정신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월주 스님은 불교계의 대표적 사회운동가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공동대표,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IMF 때는 김수환 추기경 등과 함께 실업극복 국민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현재 전북 금산사, 실상사 그리고 서울 영화사 조실(祖室)이며 함께일하는재단과 '나눔의 집', 지구촌공생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난 2012년 만해대상을 받은 월주 스님은 상금은 케냐에 '만해초등학교'를 짓는 데 기부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20여일이 흘렀지만 슬픔과 애도는 식을 줄 모른다.

"제가 금산사 주지(住持) 시절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1993년)이 나서 위령제, 49재를 치러드리며 신도 500여명과 격포 앞바다에 가서 꽃을 뿌리고 애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동안 얼마나 사건 사고가 많았나. 또다시 이런 참사를 겪었으니 슬퍼하고 애도하는 것이 당연하다. 불교엔 중도(中道)가 있다. 기쁠 때도 지나치게 기쁨에 빠져들지 말아야 하고, 슬플 때도 슬픔에 지나치게 끌려가지는 말아야 한다. 진심으로 슬퍼하는 가운데, 슬기롭게 이 슬픔과 고통을 극복해나가야 한다. 희생자들도 그걸 바랄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사회적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 보나.

"우리 스스로 위대한 나라라는 환상에 취해있다가 당한 것이다. 10대 교역국에 한류(韓流) 효과까지 있으니 경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대단한 줄 알고,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요행수로 돌아갈 줄 착각했다. 우리는 2차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 가장 성공적으로 압축성장하며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이뤘다. 그러나 그사이 한편에선 책임은 지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방종(放縱)이 싹텄다. 절차와 법질서를 무시하고 목적과 성취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조도 생겼다. 민주화 이후에는 시민단체 사람들이 정부와 정치권에 들어가면서 감시기능과 긴장관계도 사라졌다. 그 허실이, 그런 문제가 총체적으로 모인 것이 이번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뿐이 아니다. 지하철 사고 나고, 날림공사로 체육관 무너지고, 하늘에선 북한 무인기에 뚫리지 않았나. 해상, 육상, 공중에서 지금 우리는 안전불감증에 안보불감증까지 겹쳐있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생긴 구멍들이다. 그걸 잘 메워야 한다."

―국민은 정부, 특히 대통령에게 무한책임을 묻고 있다.

"사전에 부실하게 감독하고 얼른 가서 구조하지 않고 영역 다툼 벌이고, 실종자와 생존자 숫자도 왔다갔다하다가 엊그제 또 바뀌었다. 불신(不信)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그 위에 얹혀있는 꼴이다. 하지만 저는 일단 박 대통령이 사고 다음 날 진도에 내려간 것은 잘한 일이라고 본다. 또 대통령이 '무한책임을 느낀다' '대안을 갖고 사과하겠다'고 했으니 우선 그 대안 내용을 보고, 부족하면 비판해야 한다고 본다. 결국엔 유권자들이 평가할 것이다. 대통령은 계속 사과하는 자세로 수습에 진력해야 한다. 여야도 세월호 참사로 정쟁(政爭)하면 안 된다. 여야는 정치력을 회복해야 한다."

지난 1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청소하고 있는 모습.
월주 스님은“세월호 참사에서도 이름 없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며 희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1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청소하고 있는 모습. /뉴스1
―대통령이 말하는 대안은 어떤 것이라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나.

"'무한책임'이라 했으니 그에 걸맞게 해야 한다. 외국의 사례도 충분히 조사하고 연구해서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 개각은 총리를 위시해 책임 있는 사람, 늑장 대응한 부처의 장(長) 등 바꿀 사람을 바꾸고 능력과 전문성 있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골라 맡겨야 한다. 싹쓸이 개각은 오히려 혼란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전관예우, 관민 유착, 관피아 같은 문제는 공소시효 끝나지 않은 것은 모조리 조사해야 한다. 법이 물렁했는데, 조사해서 처벌할 사람은 경중을 가려 처벌해야 한다. 부조리 척결하는 데 미적거리면 안 된다. 대통령이 통치만 할 것이 아니라 정치력을 발휘해 의견을 많이 들어야 한다."

―인터넷과 SNS에는 각종 괴담이 떠돌고 있다. 대통령 퇴진 요구도 나오고 있다.

"정권을 싫어하거나 비뚤어진 공명심을 가진 사람들이 괴담을 만들어 내는 모양인데, 상황을 혼란하게 만들 뿐이다. 서해훼리호 사건 때도 선장이 살아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결국 배와 함께 인양되지 않았나. 건전한 비판은 몰라도 괴담은 유가족들에게도 상처를 입힌다. 언론도 선정적인 보도를 자제해야 하고, 부정확한 정보를 옮겨 혼란을 더하면 안 된다. 대통령 퇴진은 지금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더 큰 혼란만 온다. 먼저 수습해야 한다."

―100만명 이상 국민이 분향소를 찾았고, 자원봉사자들이 진도에 줄을 이었다.

"거기에 희망이 있다. 이권(利權)과 이해관계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의로운 사람들이 이번에도 얼마나 많았나. 학생들은 서로 구명조끼를 입혀줬고, 박지영 같은 승무원은 (학생들에게) '먼저 나가라'고 하고 끝끝내 배를 지켰다. 참사 가운데도 그런 명암(明暗)이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침몰할 것 같아도 그런 도덕성 가진 사람들이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것이다. 언론도 이런 부분을 많이 보도해 전화위복을 이룰 수 있는 전기(轉機)를 만들어야 한다."

―정신개혁 운동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서구는 개인주의라고 하지만 권리와 함께 책임도 다하는 시민의식으로 사회를 건강하게 키워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 국가들은 시민의식, 책임 부분이 좀 약한 것 아닌가 싶다. 이제 '잘살아보세' 대신 '올바르게 살아보세' 같은 정신운동이 필요하다. 탐욕을 버리고 남을 배려하고 법질서를 지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하향식(下向式)으로 하면 안 되고 자발적으로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새마을운동이나 IMF 때 금 모으기 운동처럼 국민 사이에서 '올바르게 살아보세' 운동이 일어나면 좋겠다. 저도 시민사회 원로들과 함께 '국가 재창조 국민운동'을 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