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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울산 행사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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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듣는다고 칼로 베고, 그래도 안되면 칼로 찔렀어"
위안부 할머니들, 울산 청소년들에게 일본군 만행 육성 증언
박석철(sisa) 기자


"말 안 듣는다고 묶어놓고 칼로 베더니 그래도 안 들으니 칼로 찔렀어요."

15세 때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를 강요받았던 올해 일흔아홉 살의 이옥선 할머니는 자신에게도 칼에 베인 자국이 있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할머니는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씻지 못할 치욕을 안고도 살아 있는 것은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한국청소년지도자협회 울산지부와 울산고교총학생회협의회는 8월 13일 오후 2시 롯데백화점 울산점에서 '광복60주년기념 청소년 일제만행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에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3명이 참석해 청소년과 시민 1천여명 앞에서 일제의 만행을 낱낱이 고발했다.



▲ 위안부 할머니들의 넋을 위로하는 씻김굿을 하고 있는 무용가 현숙희씨.

ⓒ2005 박석철

규탄대회에서는 또 울산 농소고 이동준 학생회장과 울산여고 이정현 학생회장이 일본 고이즈미 수상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서한문에서 "당신네 군대에 강제로 끌려가 성적 학대는 물론 차마 인간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고통을 당한 팔순 할머니들의 절절한 외침을 들었을 때 당신네 일본이 우리나라 국민과 이 강토에 얼마나 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가는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며 "그럼에도 당신네 나라는 이들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사죄와 보상은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기에 급급하다"고 성토했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일본수상관저에 보내는 피해보상 항의 메일과 애도시가 낭송됐으며 씻김 굿판을 열어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해방됐지만 돈이 없어 구걸해야 했다"



▲ 취재진에게 일제의 만행을 설명하는 강일출 할머니.

ⓒ2005 박석철
이날 증언자는 나눔의 집(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65)에 거주하는 강일출(78, 경북 상주), 박옥선(82, 경남 밀양), 이옥선(79, 부산) 할머니였다. 이들은 일제 때 일본군에 의해 중국으로 끌려가 온갖 능멸을 당한 후 고국에 오지 못해 중국에 거주한 분들이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해방이 됐지만 돌아올 돈이 없어 중국의 농촌을 돌아다니며 밥을 구걸해 얻어먹으며 연명했다"고 밝혔다.

꽃다운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성적학대와 폭행을 당한 것도 모자라 배고픔까지 겪어야 했던 것. 강일출 할머니는 "해방이 됐지만 돈이 없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며 "당시에는 중국의 공산화가 엄격해 편지도 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에 2000년 고국에 돌아오기까지 58년 동안 부모형제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강 할머니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일출이를 죽었다고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한다. 강 할머니는 2000년 귀국 후 1년이 채 안 돼 국적을 회복했다.

박옥선(82) 할머니는 중국 연길시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다. 박 할머니는 "죽지 못한다, 한이 맺혀 죽지 못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위안부를 공출이라고 우기는데 인간에게 공출이 어딨나?"

고향이 부산인 이옥선(79) 할머니는 울산에 다니러왔다가 일본군에 끌려간 경우다. 할머니는 41년에 끌려가 해방 때까지 5년간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견뎠다. 고향에서는 죽은 줄 알고 사망신고를 했을 정도였다.

이 할머니가 58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할머니의 부모형제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할머니는 "죽어도 역사를 남기고, 역사를 알리고 죽어야 한다"며 "일본 놈들의 만행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 할머니는 2003년, 일본에서도 이 같은 증언을 한 바 있다. 이옥선 할머니는 "일본은 위안부를 공출이라고 하지만 인간에게 공출이 어디 있냐"고 청소년들에게 되물으며 박수를 받기도 했다.



▲ 이옥선 할머니가 청소년들에게 위안부의 비참함을 증언하고 있다

ⓒ2005 박석철

그는 "꽃다운 처녀들이 길에서 혹은 엄마 젖가슴에 붙어 있다 끌려갔다"며 "공장 공원이나 간호사로 돈을 벌게 해 주겠다고 속여 끌고 간 경우도 많다"고 증언했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칼로 베고, 또 듣지 않는다고 칼로 찔러 죽인 후 묻어주지도 않고 내다 버린 처녀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증언했다.

이 할머니가 있던 곳은 전기철망이 놓여져 있어 도망갈 수도 없었다. 이 할머니는 새벽에 몇몇이 탈출을 시도하다 철망에 피를 흘리며 붙어있는 것을 보고 탈출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옥선 할머니는 "그때는 나라가 없어 끌려 갔지만 이제 튼튼한 나라가 있으니 여러분들이 힘이 되어 달라"고 청소년들에게 당부한 뒤 "할머니들이 다 죽어도 끝이 안 난다. 여러분 같은 청소년들이 있기 때문에"라고 힘주어 말해 청소년들의 박수를 받았다.

할머니들 모두 건강 악화

이날 할머니들을 인솔해 울산에 온 나눔의집 안신권 국장은 "할머니들이 모두 팔순을 넘어 건강이 걱정이다"며 "이 정도 나이가 들면 누구나 건강이 안 좋은데 하물며 성적 폭압을 받은 이들 할머니들의 건강이야 오죽 하겠냐"고 말했다.

그는 또 "고향에 돌아왔지만 가족과 친지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배신감만 느끼는 할머니들도 있다"며 "끌려간 것이 이들의 잘못이 아닌데도 한국여성 특유의 죄의식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일본정부는 이들에게 명예회복의 길을 하루속히 열어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제 때 20만 명의 조선 처녀들이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수치심에 자살하고 증거인멸을 위해 학살당한 경우가 많다는 게 안신권 국장의 전언이다. 현재 국내에서 240명의 할머니들이 신고해 117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중국에서도 31명의 할머니들이 확인됐는데 이중 14명은 한국으로 오고, 나머지는 중국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할머니들의 증언이 끝난 뒤 김은수 시인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넋을 기리는 '이 땅의 꽃'이라는 시 낭송으로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또 무용가 현숙희씨는 씻김 굿판을 열었다.

행사를 주관한 한국청소년지도자협회 울산지부 이하형 회장은 "우리 민족사에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육성증언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했다"며 직접 할머니들의 증언을 들으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말했다.



박석철 기자는 시사울산(sisaulsan.com) 발행인이며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2005-08-13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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