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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특별법 거부 의원 고발할 것"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3-09-17
"친일청산 특별법 거부 의원 고발할 것"
[인터뷰] 민족-역사연구에 반생 바친 김삼웅 성균관대 교수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정운현/강이종행 기자





▲ 김삼웅 성균관대 교수 (전 <대한매일> 주필)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대담 및 정리 : 정운현 강이종행 기자
- 사진 : 남소연 기자


'지사형 논객' 김삼웅은 누구?


1943년 전남 완도출생의 김삼웅 전 대한매일 주필은 정당인·저술가·언론인·역사연구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사상계> 신인논문상 입상을 계기로 언론활동을 시작한 그는 군사정권 당시 제도권 언론이 제구실 못하던 시절 야당 기관지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구속·고문·수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그래도 당시 나만큼 언론자유를 누린 사람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4년여 대한매일 주필로 재직하면서 민족문제, 언론, 국내정치 등을 주제로 정론을 펴온 그는 독자들로부터 '지사형 언론인'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평소 저술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해온 그는 <친일정치 100년사> <한국 곡필사> <필화사> <한국민주사상의 탐구> <금서> 등 3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또 대한매일 재직시절 <백범 김구 전집> <박은식 전집> 등을 주도적으로 편찬하기도 했다.

1만여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 그는 요즘 단재 신채호 선생의 평전을 준비중이며, 현재는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 정운현 기자



역사학자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20세기 우리 역사를 '한(恨)의 역사'로 규정한 바 있다. 지난 세기 전반은 일제 강점하 군국주의자들로부터 혹독한 무력통치를 받고 지냈으며, 후반은 외세에 의한 국토분단과 그로 인한 이산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새 세기를 맞고서도 아직도 과거사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일제하 피해자들은 여전히 역사의 상처속에서 살고 있으며, 우리 현대사를 왜곡해온 친일문제 역시 제대로 정리된 것이 없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들의 문제는 세인의 관심조차 끌지 못하고 있다.

뜻있는 몇몇 국회의원들의 주도로 과거사 청산 관련 특별법이 발의는 됐으나 상임위조차 배정받지 못한 채 국회에서 수년째 방치돼 있는 것이 우리 국회의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반평생을 민족문제, 역사청산 문제 등에 매달려 연구와 함께 사회참여 활동을 해온 사람이 있다. 김삼웅 성균관대 교수(전 <대한매일> 주필)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후년(2005년)이면 광복 회갑(60) 주년인데 아직까지 이런 문제가 처리 안됐다는 것은 정부가 백성들에게 큰 죄를 저질렀다고 봐야 한다"며 "이제라도 그들의 아픔을 정부가 나서서 어루만져 줘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친일청산 등 과거사 청산 문제를 비롯해 한국사회의 이념 갈등, 보수언론의 구조적 문제, 작금의 민주당의 분당사태 등에 대해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토해냈다. 30년 가까이 정당인, 저술인, 언론인으로 활동해온 그를 추석 연휴 전날(9일) <오마이뉴스> 사무실로 초청, 얘기를 나눠 보았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을 간추린 것이다.


- 지난해 봄 대한매일 주필에서 물러난 후 그간 어떻게 지냈나. 근황을 소개해 달라.
"신문사를 그만 둔 뒤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그 외 몇몇 단체에서 심의, 자문역할을 맡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번씩만 회의에 참여해도 시간이 금방 간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하면서 보람도 느끼지만 어떤 때는 우리 사회에 인재들이 적지 않은데 왜 내가 이런 일을 도맡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 참여하고 있는 기관이나 단체들의 면면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 제주4.3사건 진상규명위원회,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위원회, 민주공원 건립추진위원회, 임시정부 기념관건립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처벌 특별법제정촉구위원회, 친일파인명사전 편찬위원회 등에서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 백범 김구선생 기념관 운영위원회, 독립기념관, 광복회 등에서도 이사,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 참여하는 기관, 단체가 무려 10개가 넘어보인다. 이름만 걸어두는 명예직인가, 아니면 직접 회의에 나가서 의사 결정에도 참여하고 있는가?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등 정부 산하 위원회는 정기적인 회의가 있고, 거기서의 결정은 곧 행정집행으로 이어진다. 그외 대부분의 단체도 직접 참여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결정하거나 또는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기도 한다. 흔히 사회저명인사들이 이름만 걸어두는, 있는 있으나마나 한 것들과 다르다."


- 활동하고 있는 기관·단체들의 성향을 크게 보면 독재정권의 인권유린과 반역사성에 대한 재평가 및 명예회복, 그리고 또 하나는 민족정기와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과 개인적으로 어떤 인연이 있나?
"20여년 동안 재야 민주화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민족정기나 정의보다는 대세주의, 당대의 권력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원인은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서 왔고, 지금도 여전히 수구 기득권 세력에 포위돼서 민족정기나 사회정의가 설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 양심적인 인사들 중에서도 이 부분을 소홀히 하거나 또는 그런 사람들 대부분이 과거 권력층이다 보니까 이런 세력들을 적대시 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라도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더 오래 갈 것 같아 시작했다."

- 최근에는 민주당 김희선 의원이 주도하는 '친일 반민족행위처벌 특별법' 제정 촉구위원회에 동참한 것도 그런 작업의 연장선인가?
"그렇다. 1949년 6월 6일 이승만 권력의 '반민특위 습격사건'으로 반민특위가 좌절된 이후 국회 차원에서 왜곡된 우리 현대사를 바로잡으려는 시도 자체가 없었다. 더러 몇몇 의원들이 그런 얘기를 사석에서는 했지만 한번도 실행이 안됐다.

김희선·김원웅 의원을 중심으로 친일파 청산 특별법안이 마련되는 과정에 나도 참여했으며, 그런 인연으로 법제정을 위한 촉구위원회의 홍보위원장을 맡게 됐다. 관련 성명서나 문건 작성 등을 내가 직접 맡고 있다."

- 현 정치권은 친일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고 보나?
"현 정치권 내에 친일인사는 없다. 몇몇 현역의원들의 선대가 친일문제로 비판받을만하나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다. 그러나 해방 반세기가 지난 지금 16대 국회에서 이런 법률 하나도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특별법 제정을 위해 154명의 의원들에게 서명을 받아서 상임위에 상정했다는데, 소문에는 행자위·법사위에서 서로 안 맡으려고 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핑퐁식으로 민족문제를 외면하는 것 자체가 기득권에 친일세력들하고 어떤 식으로든 연계된 사연이 있는 것 아닌가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만약 특별법 통과를 거부 내지 훼방하는 의원이 있으면 샅샅이 조사해 국민과 역사 앞에 고발할 방침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국회 통과와 입법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
"반반이다. 현재 154명의 의원이 서명했으니 수적으로는 많다. 그러나 국회 지도자들이라든가 상임위에서 기피하려는 것 같은데, 이같은 풍조는 여론·국민의 힘으로 바로 잡으면 반드시 통과될 것이다. 그게 안 된다면 그런 사람들은 사회정의을 말할 자격이 없다."

-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에도 참여해서 활동하고 계신데 어려움은 없나?
"왜 없겠나, 많다. 우선 우리 위원회의 인적구성에 문제가 있다. 구성원들 중에는 과거 보수세력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런 특별위원회의 역사적 소명의식과 거리 먼 사람이 적지 않다. 또한 언론·학계·시민단체 등 여론 주도층이 민족정기 회복·과거청산·국가폭력 등 원천적 문제를 거의 외면하고 있다는데 큰 고충을 느낀다."

- 그렇다면 의사결정 과정에서 찬반논쟁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럴 경우 어떻게 조정·해결하나?
"결국은 다수결로 결정한다. 물론 위원회가 회의체이고, 또 민주화 보상심의위원회의 경우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이 추천한 사람이기 때문에 각계의 의견 수렴을 해야 된다. 하지만 문제는 과거사를 현재 실정법의 테두리에서 이 문제를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경우 몇 달 동안 위원들 선정문제로 거의 업무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 국회에서 (조사)권한을 주지 않은 데다 실무과정에서 인선 등에 문제 있다보니 좋은 기회를 잡고도 결국 소정의 역할 하지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이다."

- 그동안 민주화보상 심의위원회는 대상자를 얼마나 선정했고, 또 남은 대상자는 얼마나 되나?
"1만명이 신청했고, 그중 6000명 정도가 심의가 끝났다. 향후 3000~3500명 정도가 대상자인데 어려운 사건들이 많다. 예를 들면 미 문화원 방화사건 등이다. 지극히 민감하면서도 이념·정치적 부분이 남아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걱정이다. 그러나 한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것은 민주화를 위해 희생·투쟁한 사람들을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친미·반북 등 작은 카테고리에서 접근하면 이 법의 제정 의미는 상실된다. 따라서 민주화운동이라는 장구한 역사의 일부분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고 심판해야 한다고 본다."

- 최근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동아> <조선>의 친일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는데….
"동아·조선이 일제 말기에 친일 반민족행위를 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모든 자료와 기록에 남아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이를 반성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를 숨기면서 '민족지'라고 엉뚱한 주장을 펴고 있다. 외세강점기에 민족을 배반했던 신문, 언론인, 사주 후예들은 역사와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해야 한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그들이 지금도 신문을 낼 수 있겠는가?"

- 얼마전 독립기념관에서 철거된 일제 당시 조선일보 윤전기의 철거 결정에도 동참한 것으로 안다.
"재작년 이사회 때부터 다른데도 아닌 독립기념관에 친일신문을 찍은 윤전기가 전시된 것은 선열에 대한 모독이고 기념관의 정체성에도 문제가 많다고 꾸준히 제기했다. 그러던중 작년에 안티조선 시민단체들이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철거논의가 본격화됐다.

이사회에서 윤전기 철거를 결정하자 조선일보에서는 마치 노무현 정권이 외압을 넣어서 정치적인 결정으로 이사회가 결정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말도 안되는 얘기다. 이사진에는 생존 독립운동가를 비롯해 한나라당 의원도 3명이나 포함돼 있다."

- 이런 일들로 그간 조선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었나.
"여러번 있었다. 언젠가 '국민의 힘'이라는 단체의 행사에서 발언한 내용을 왜곡보도하는가 하면, 한 학술 세미나에서 발표를 했는데 발표자 6인 가운데 다른 사람은 다 넣고 내 이름만 쏙 뺐더라. 또 내가 낸 책이나 논문 가운데 다른 데에서는 톱으로 비중있게 다뤄도 조선에서는 아직 단 한번도 다루지 않더라.

반면 친일파 옹호하는 논문이 나오면 대서특필하는데, 서울대 모 교수의 논문을 다룬 기사는 논문 내용보다 보도한 내용이 더 많은 것 같더라. 친일전력 언론들이 과거반성을 안하는 것도 문제지만, 연장선상에서 여전히 반민족적 보도나 논평, 이런 것을 먼저 청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 최근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이 '국적포기'라는 충격적인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이를 어찌 보나?
"이런 일이 벌어진데 대해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이 역사 앞에 석고대죄 해야한다. 제 나라 동포가, 그것도 일제시대 때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이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일,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적어도 알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부족했다고 본다.

내가 알기로 정부나 국회는 일회성으로 넘기고 지식인들도 하루 잠깐 보도하고 넘어가는 것으로 이 사건을 본 것 같다. 최근에 발생한 일 가운데 가장 가슴아픈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후년이면 광복 회갑(60)주년인데 아직까지 이런 문제가 처리 안됐다는 것은 정부가 백성들에게 큰 죄를 저질렀다고 봐야 한다. 이제라도 그들의 아픔을 정부가 나서서 어루만져줘야한다."

- 우리 과거사 가운데 아직 해결이 안된 사안으로 대표적으로 어떤 것을 꼽을 수 있나?
"가장 많은 것은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배상·보상 부분들이라고 본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에 드러난 구 일본군 위안부(정신대), 사할린교포 문제, 일제가 수탈해간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 등도 시급히 해결되어야할 문제라고 본다.

민주화운동 보상의 경우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군사독재 시절 반민주화 억압통치 세력에 대한 역사적인 청산·정리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친일파 청산 특별법처럼 특별법을 만들어 반민주 인사들에 대한 역사청산도 해야 한다. 이런 자들이 거대 야당의 중추세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 5·6공 인물 청산론을 주장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는 당파 청산의 차원이 아니라 역사 청산의 당위로서 절실하다."

-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특별법안 등 과거사 청산 관련 특별법안 10여 개가 국회에서 방치되고 있다는데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 국회의원들은 너무 쉽게 금배지를 단다. 과거에 무슨 일을 했든 누구나 국회의원이 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이런 부분에 대한 의식이나 소견이 없다. 특히 지난 40여년 동안 독재정권에서 길들여진 의식을 가지고 있다보니 6·25 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일제 때 핍박받은 사람들의 얘기가 마치 조선·고려조 때 있던 일처럼 여기고 있다.

또 의원들이 지극히 타산적이고 계산적인데,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정치자금 모금 등 현실적인 면에도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것도 관심을 갖지 않는 한 요인인 것 같다. 결국 수십년 동안 한맺힌 사안들인데도 여전히 국회 서랍속에서 법안이 썩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최근 당국이 해외 민주인사 50여명에 대해 귀국허용 방침을 발표했는데 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만사지탄(晩時之歎)이지만 이제라도 그렇게 한다니 다행이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부분에 대해 당사자들이나 민주화 진영 전체에 사과해야 한다. 자신들도 어려움 겪은 뒤 집권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사람들을 해외에 방치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더구나 '각서'를 요구하는 것은 민주인사들에 대한 모독이다.

현정부도 재독철학자 송두율씨에 대해 그런 식으로 하는 모양인데, 법원에서도 송씨가 북 노동당 인사가 아니라는 게 드러나지 않았나. 그런 사람의 입국을 거부한다는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계적인 음악가인 윤이상 선생의 입국을 거부한 것과 뭐가 다른가. 금전보상을 신청한 것도 아닌데…. 명예만이라도 회복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선행은 빨리 할수록 좋다고 했다."

- 최근 이른바 보수-진보 진영간에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보수우익(또는 극우) 진영이 대놓고 거리로 뛰쳐 나오고 세를 규합해 나가고 있다. 종전에 보지 못한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유럽의 경우 보수세력은 바탕이 대개 '민족주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수세력의 경우 친외세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3.1절, 8.15 광복절에 그들은 미국 성조기를 흔들며 주한미군 주둔을 외쳤는데 하필이면 민족사적 기념일에 그런 행동을 했어야 하나.

과연 우리 보수세력들이 그렇게 타락했나? 친일파 청산 등과 연관시켜 볼 때 상당수가 보수라는 이름 하에 보신주의를 가지고 있다. 일제 때부터 누려왔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보수'라는 당위성을 입혀서 그러다 보니 민족적인 것도, 국가적 자존도, 시민사회적인 양식도 버리고 무조건 힘있는 자만 추종하고 있다.

해방직후 찬탁 반탁 논쟁은 국민들이 그 내용을 잘 몰랐다고 치자. 그러나 지금은 시민의식, 즉 민도가 얼마나 높은가. 요즘의 보수물결은 결국 보수언론들이 우리사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사회가 이 점 창피스럽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 언론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조중동이 서로 다른 매체이면서도 큰 틀에서는 '이구동성'인데 그 요인을 뭐라고 분석하나?
"조중동이 일체감을 갖게 된 공통분모는 바로 '보수'다. 즉 가진 세력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동아>는 호남을 기반으로 최근까지 (보수세력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조선> <중앙>에 밀리면서 보수 지향으로 돌아섰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으로 알고 있다.

조중동이 생존과 영향력 증대를 위해 저렇게 하는 것이야 그렇다고 쳐도, 이에 대응하는 군소신문들의 처사도 못마땅하다. 조중동이 특정 아젠다를 세우면 군소 언론사들은 무조건 따라간다. 그런 신문들은 마치 동종교배식으로 자신들의 색깔에만 또는 작은 울타리에 있는 사람들끼리만 경쟁하려 하니까 상대가 안 되는 것 같다."

- 오랫동안 야당 기관지 책임자를 지냈고, 4년간 <대한매일> 주필로도 활동했다. 새정부의 언론정책이 보수언론으로부터 맹공격을 받고 있는데, 언론과의 대등한 관계, 적극적인 오보 대응 등을 골자로 한 노 대통령의 언론관에 대해 평가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역대 문민 대통령 3명 중 가장 용기있는 태도라고 본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언론학자, 시민단체 등에서 나서야 하는데 미약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검찰에서 하면 탄압한다고 하고.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정권 출범 6개월쯤 지났으면 이제 제도적·구조적으로 변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작은 펀치만 날리다 보니 (대통령의) 임기는 한정적이고, 반면 보수언론들은 세습해서 언론권력을 대물림하니까 승패는 뻔한 것 아닌가. 거대 야당 때문에 법 제정이 어렵다면 있는 공정거래법이라도 제대로 적용하기 바란다."

- 민주당, 또 그 이전에는 전신격인 신민당의 당료 출신으로 최근 민주당의 분당 사태를 어찌 보나?
"민주당 이전엔 가장 진보적이던 구주류 사람들이 김대중 정권 5년 동안 부패랄까 수구 이미지로 인식되는 과정이 대단히 안타깝다. 신진인사들을 수혈하는 과정에서 야당 또는 민주당에 참여한 각계 민주인사들이 지난 5년 동안 민주당을 근대적인 서구적 정당으로 탈바꿈 못한 적이 대단히 안타깝다.

북핵 문제, 경제문제, 민생현안 등이 산적해 있는데도 집권당인 민주당은 이를 제쳐두고 '법통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밥통 싸움'에 다름 아니다. 지난 50년간 양심세력으로 싸워왔던 민주진영이 분열된 것은 신구파를 막론하고 공동 책임이다."

2003/09/09 오후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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