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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받는 여성들에 관심 가졌으면"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3-08-30
▲ 아프리카여인 이미지 담은 옷 다음달 일본군 위안부와 여성 노숙자들을 위한 기금 마련 전시회와 퍼포먼스를 갖는 이기향 교수, 에이즈와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프리카 여인들의 이미지를 담은 옷을 설명하고 있다. /황정은기자 fortis@chosun.com






[사람들] "소외받는 여성들에 관심 가졌으면"


여성 노숙자·위안부 기금마련 의상전 갖는 이기향 교수


“남성들이 주도해온 역사 뒤에는 항상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들을 감싸안으며 고통을 감내하던 여성들이 있었어요. 여성들의 지위를 바로 찾아주는 것이 화합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9월 초 일본군 위안부와 여성 노숙자를 위한 기금 마련 예술의상전시회와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는 이기향 (李基香·의생활학부·48) 한성대 교수는 전시 1주일여를 앞두고 있다. 교수 연구실에 들어서자 중세 유럽 십자군 전쟁 때 여성의 정조대를 형상화한 드레스, 베트남 사창가의 순결한 처녀를 표현한 흰옷 등 전시에 사용할 의상과 소품들이 빼곡이 방을 채우고 있었다.

오는 9월 5~16일 세종문화회관 별관 광화문 갤러리에서 열리는 행사에는 의상 전시와 함께 불교 화엄경 중 선재동자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퍼포먼스를 관람객들 사이에서 펼칠 예정이다. 퍼포먼스는 삶의 참된 이치를 듣고 익히는 선재동자처럼 주인공 ‘화(華)’가 세계 각국의 소외된 여성과 성모 마리아·마야 부인(부처님 어머니) 등을 만나는 내용으로 꾸몄다.

그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느꼈던 여성으로서의 답답함을 불교 교리를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고 말했다. 미국 유학을 다녀와 불교를 “다소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이 교수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된 건 지난 86년 말 시어머니의 권유를 통해서였다. 4년 전 전시회를 기획할 때는 불교적 사상을 기반으로 작가로서의 존재론적 고민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3년 전 어머니를 여의고 여성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면서 소외되고 고통받고 있는 세계의 어머니들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행사 기획을 바꿨다. “어머니는 평생 아버지 뒷바라지 잘하고 좋은 며느리로 평가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분이셨죠.”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이 교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 교수는 묵묵히 살아오신 어머니의 빈자리가 그렇게 클 줄 몰랐다며 “아버지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1년을 못 채우고 뒤따라가시는 걸 보면서 더 큰 공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후 여행을 다녀도 TV 프로그램을 봐도 신문을 읽어도 어머니란 이름의 세계 여성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말했다. 불교 봉사단체를 통해서 몇 년 전부터 관계를 맺어오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과 여성 노숙자 등 소외된 여성들의 문제도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중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이 많은데 아직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조차 받아내지 못했다”며 소외된 여성들에 대한 관심부터 환기시킬 필요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의 입장료 수익금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10여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과 20여명의 여성 노숙자가 생활하며 재활할 수 있는 기술 등을 배우고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화엄동산’에 줄 계획이다. 그는 “액수는 얼마 되지 않겠지만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행사를 위해 지난 3년간 여성 관련 자료를 찾아서 모으고 동·서양 복식사와 역사를 다시 공부했다. 화엄경 등 불교 교리책도 섭렵했다. 그는 전시회가 코앞에 닥치니 여성학 등을 좀더 체계적으로 공부해 볼 걸하는 후회가 남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화(華)’는 ‘꽃이 피어서 빛난다’는 뜻으로 행사에 참가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화가 되어 공존하기를 바란다”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뒤에는 소외된 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여성들이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유린 기자 yrjoo@chosun.com )


입력 : 2003.08.28 18:26 00' / 수정 : 2003.08.28 18:56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