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2004년 8월 사진전시회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05-03-21
party-91.jpg
사진전시회


8월 11~22일까지 인사동 겔러리 피쉬에서 "단절의 계보" -일본군 '성노예'제도 생존자의 소리와 초상-"이란 주제로 할머니들의 육성이 담기 소리와 사진, 그림 등을 전시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보여주었습니다.

2004년, 해방 59년을 맞았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였던 김순덕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살아 생전 수요시위에 꼬박 꼬박 힘든 몸을 이끌고 나와 참혹한 일본의 만행을 증언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외쳤지만, 해방 이후 59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떠한 공식적인 사과나 배상도 받지 못한 채 결국 숨을 거두셨다.

일본군 성노예 제도의 피해 생존자들은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할머니들은 무엇보다 자신들이 죽고 나서도 자신들이 겪은 참혹한 역사가 잊혀지지 않기를, 후세에 올바르게 알려지고 기억되기를 바라셨다.


할머니들의 소리와 초상화로 만나는 ‘단절’의 역사


<단절의 계보-일본군 ‘성노예’ 피해 생존자의 소리와 초상>은 할머니들의 존재가 새로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됐다. 나눔의 집과 일본군 '위안부'역사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전시회에서, 조수아 필자(Joshua Pilzer)가 할머니들의 소리를 녹음했고, 야지마 쯔카사(Yajima Tsukasa)가 사진을 찍었다.


전시회에서는 ‘정신대’나 ‘종군위안부’가 아니라 피해자들의 실체를 의미하는 일본군 ‘성노예’ 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승연 ‘정신대 누드’ 파문 때 김순덕 할머니는 “나를 정신대라고, 종군위안부라고 부르지 마라. 나는 스스로 봉사해서 그들을 위로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성폭력의 현실, ‘성노예’로서의 삶을 명확히 직시하고 계셨다. 일본군 성노예 제도의 문제는 한국남성들이 함부로 내뱉듯 “국력을 키워 우리도 일본여자 강간하자”고 볼 문제가 아니라, 전쟁의 폭력성 안에서 모든 여성들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여성폭력의 현주소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정신대’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44년 여성정신근로령이 공표되면서부터다. 이 법령에 의한 여자근로정신대는 남성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여성까지 군수공장 등에서 일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정신대’는 강제 근로노동자까지 통칭하는 용어이고 일본군성노예와 구분해야 한다. 또 일본군은 이런 여성들을 군위안부 혹은 작부, 창기, 추업부 등으로 불렀는데 이러한 용어 역시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단절의 계보’라고 이름 붙여진 이번 전시는 할머니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단절’을 재인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단절’이라는 화두는 다른 존재, 다른 삶, 다른 경험이라고 타자화시키며 잊혀질 지 모르는 할머니들의 경험이, 실은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의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생각해보라고 권유하는 듯 하다.




“억천만년 살고 싶네” 노래한 김순덕 할머니





전시회장에 들어서면 나란히 걸려있는 할머니들의 초상은 모두 같은 앵글, 같은 프레임으로 찍혀 있다. 같은 경험을 한 여성들의 얼굴은 때로는 다르게, 때로는 겹쳐지면서 공통분모를 드러낸다. 할머니들의 초상 앞에는 간단한 삶의 이력이 적혀있고 헤드폰을 끼면 할머니들의 나지막한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할머니들의 나지막한 노랫가락은 어떠한 외침이나 주장보다 강렬하게 가슴속에 다가온다.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잊혀져 가는 역사에 대한 뼈아픈 증언이며 치열한 생존의 일기로 각인된다.


팔월이라 십 오일 날은 우리나라의 해방된 날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고 거리마다 만세로다

만세~ 만세~독립만세 우리나라 해방됐네

미국은 믿지 말고 소련에는 속지말자

남북통일 앞당겨서 우리나라를 건설하여

억천만년을 살고 싶네

남 다 자는 고요한 밤에 나만 혼자 이래 앉아

지나간 일 펼쳐놓고 오는 내 설음 생각하니

산밖에는 태산이로다 물밖에는 태해로다


-김순덕 할머니 ‘창부타령’


모두가 만세를 부르고 기뻐했던 독립, 그러나 ‘순결’을 잃었다는 죄의식에 섣불리 기뻐하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생존자들의 서글픔은 할머니의 목소리에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할머니들은 각자의 목소리로 유행가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일본군의 군가를 부르기도 하고, 전통민요를 읊조리기도 한다. 그 모든 목소리는 정면으로 응시하는 할머니들의 눈빛과 함께 ‘외침’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공명한다. ‘사진’과 ‘소리’라는 미디어를 통해 여성과의 ‘새로운 만남’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억천만년을 살고 싶다던 김순덕 할머니는 올해 세상을 떠났지만, 할머니의 목소리에 대한 우리들의 응답은 여전히 남아있다. 입을 틀어막기 위한 국민기금이 아닌,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통해 잘못된 역사를 대물리고 싶지 않았던 할머니들의 간절한 염원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선명하게 각인돼 또 다른 ‘생존자’의 목소리로 이어질 것이다.